종합병원 10곳 중 3곳 "간호사가 직접 빨아"

      2020.01.25 08:30   수정 : 2020.01.27 15:3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다른 병원은 어떤가요? 우리만 집에 가져가서 빠나요?”
“정말 집에서 빨래하도록 하는 병원이 있어요? 많이 작은 병원인가요?”

간호사는 얼마나 자주 옷을 갈아입을까. 그 옷은 어디서 세탁할까. 지난 기사에서 언급했듯 기자는 당연히 간호사 근무복이 병원 내에서 세탁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가천대학교 길병원(원장 김양우) 간호사들은 집으로 근무복을 가져가 세탁한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길병원 관계자에게 이 문제를 묻자 “모든 병원이 다 세탁을 해주는 건 아니다”란 답부터 돌아왔다.

기자에게 이렇게 답한다면 병원 내 간호사들이 어떤 벽과 마주하고 있을지는 보지 않아도 훤했다.

기자만 병원 내에서 세탁이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주변에 물어봤다. 무작위로 선택된 지인 10명 중 10명 모두가 간호사 근무복이 병원에서 세탁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 가운데는 현직 의사도 있었다. 그렇다면 보도할 가치는 충분했다. 길병원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기자를 어디로 이끌지도 몹시 궁금했다.


■전국 주요 의료기관 40곳 조사
파이낸셜뉴스(라고 쓰고 본 기자라고 읽는다)가 지난 보름여 동안 전국 유명 종합병원의 근무복 세탁 실태를 아주 열심히 조사한 결과, 30%가 넘는 병원에서 근무복을 간호사가 직접 세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정 직역(수술실·신생아실·감염병동 등)에 한해 세탁을 해주고 일반병동은 개별 세탁하도록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길병원 사례처럼 노사합의가 이뤄진 이후에도 개인이 세탁하고 있는 곳도 있었다.

기자가 각 병원 노동조합과 해당 병원 근무자 등을 통해 교차 확인한 대형병원 40곳 중 근무자가 개별세탁을 하고 있는 곳은 모두 14곳이다. 길병원을 비롯해 충남대학교병원, 순천향대학교천안병원 등 유력 의료기관이다. 건국대학교충주병원·건양대학교병원·경상대학교병원·동국대학교병원·분당차병원·영남대학교의료원·원광대학교병원·을지대학교병원·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강동성심병원·한도병원 등도 개별세탁하고 있다.

이들 병원 가운데 일부는 일괄 전환계획이 있거나 단체세탁 적용을 차츰 확대하고 있지만 현재까진 개별세탁을 하는 간호사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매출순위가 잘 바뀌지 않는 상위 8개 종합병원 가운데선 8위 길병원만이 개별세탁을 하고 있는 상태다. 재정이 여유롭고 선진적 의료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 대형병원일수록 감염예방에도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오염은 맞지만 감염은 ‘글쎄?’
취재과정에서 만난 간호사들은 하나같이 근무복을 집에서 빨래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동국대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세탁기에 식구들 옷과 같이 돌리면 오염될 우려가 있고, 가정에서 쓰는 세탁조가 멸균상태가 아니기에 병원으로 역감염될 우려도 있다”며 “(간호사들 사이에) 불만이 굉장히 많고, 세탁소에서도 간호복을 안 받아주는 경우가 많다”고 호소했다.

실제 기자가 대형병원 인근 세탁소 몇 곳을 방문해 확인한 결과, 적지 않은 업체가 간호복 등 병원 유니폼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디서 묻은 지도 모르는 피가 묻어있는 등 오염우려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의료 전문가가 아닌 세탁소 주인들 말이다.

실제 감염가능성은 어떨까. 정은영 우송대학교 간호학과 조교수와 김진현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교수는 국내·외 권위 있는 문헌 16편을 분석한 <병원근무자 유니폼에 의한 병원 내 감염에 대한 체계적 문헌고찰>에서 병원 근무자가 착용하는 옷이 각종 균주에 심각하게 오염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저자들은 이 같은 내용을 근거로 ‘병원근무자의 근무복은 각 가정이 아닌 보건의료기관 내에서 세탁되어져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반대자들은 병원근무자 유니폼이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감염을 일으킨다는 확정적인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 위 논문에서도 ‘병원 근무자의 근무복 오염도가 근무 시작 전보다 종료시점에서 증가’했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그 오염으로 인해 감염이 발생한 확정적인 근거는 찾을 수 없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의료계 인사가 이러한 근거를 들어 ‘의료인의 모든 근무복을 철저히 관리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해왔다.

병원 근무 중 근무복이 오염되는 건 사실이지만 오염된 근무복이 감염을 일으킨다는 건 불명확하므로, 개인이 세탁해도 괜찮다는 논리다.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겠다.


■의사는 병원이, 간호사는 알아서
대다수 종합병원이 의사 가운은 세탁하면서도 간호사 근무복은 세탁하지 않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위 논문에 따르면 ‘의사보다 환자와 더 빈번한 접촉을 하는 간호사의 경우 의사복장보다 그 오염정도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의사와 간호사, 기타 병원 근무자 간의 형평성 문제는 물론, 보건위생 측면에서도 논란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건양대학교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교수들은 일반가운까지 다 빨아주고 있고, 간호사는 수술방이나 신생아실 근무자에 한해서만 세탁해준다”며 “메르스 사태에서처럼 언제나 감염우려가 있는 게 병원인데 무책임하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한국 대형병원의 이 같은 실태는 같은 의료인들 사이에서도 놀라움을 자아낸다.

근무복 단체세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 한 간호사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안 하고 있는 병원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며 “직접 환자와 대면하는 간호사들이 근무복을 집으로 가져가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제 일에 자존감을 가질 수 있겠나”하고 분개했다.

한편 노사합의로 근무복 세탁업체가 지정된 경우에도 실제로는 간호사가 세탁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충남대학교병원에서 일하는 한 간호사는 “직원이 3000명이고 간호사만 1400명인데 옷을 보관하는 곳이나 수거하는 사람이 안 정해져서 간호사들이 개인빨래를 하고 있다”며 “세탁을 할 수는 있지만 현실에 적용할 시스템은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근무복 세탁 체계가 정착된 아주대학교병원의 경우에도 2009년 근무복 세탁업체를 선정했지만 지난해에서야 제도가 안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려 10년이 걸린 것이다.

부족한 근무복 수도 문제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병원이라는 곳이 병원균이 일상적으로 있는 공간인데 간호사들이 활동복을 자주 갈아입지 않는 건 개선해야 할 점”이라며 “활동복이 최소한 3벌 정도는 있어야 세탁을 하면서 갈아입을 수 있지 않겠나”하고 말했다.

기자가 취재과정에서 접한 다수 병원 간호사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지급받은 근무복이 한 벌 또는 두 벌이라고 말했다. 해당 간호사들이 소속된 병원은 모두 지역을 대표하는 상급 종합 의료기관들이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 25일 오후 나갈 후속 기사에선 근무복 세탁과 관련한 보건당국의 규제 및 관리실태를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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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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