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공장 찾아 수백만장 현찰거래... 마스크 사재기 실태
2020.01.31 14:33
수정 : 2020.02.01 23:5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새벽 1시 경기도 한 마스크 생산 공장 앞. 중국 등 각지에서 온 외국인 바이어들과 한국인 중개상들이 많게는 수십억 원씩 현금을 들고 모여들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산으로 품절된 마스크를 대량 선점하기 위한 것이다.
현장에서 마스크를 구하려는 이들로, 공장에서 그날 생산된 마스크를 두고 경쟁이 붙는다.
정보가 빠른 이들은 금세 물량이 남았다는 다른 공장으로 부랴부랴 향한다. 며칠 분 생산량을 한 바이어에게 판매한 공장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 공장으로 찾아와 문의하는 사람들을 막고자 판매가 종료됐다는 문구를 내건다. 공장 창고와 마당엔 마스크 수백만 장이 든 상자들이 가득 쌓여 있지만 이미 주인이 정해진 상태다.
중개상 등이 모인 한 카톡방에선 관련 증언이 쏟아진다. 한 업체 관계자는 “500만장 단가 협의를 마친지 하루 만에 공장 측이 공급가를 50% 이상 인상한다고 했다”며 현장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수천만장에서 많게는 2억장까지 매입하겠다는 큰 손들이 쇄도하는 상황에서 마스크 가격이 그야말로 널을 뛰는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보가 빠른 분들은 물량이 있는 곳에 먼저 가 (구입하니, 마스크는) 자금이 확보되는 순간 현금거래로 바로 출고된다”며 “협의라는 과정이 없다”고 증언한다. 돈이 아니라 마스크를 가진 쪽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자금력이 압도적인 중국 큰 손을 기존 마스크 유통상들이 당해낼 수 없는 이유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이 끝나는 2월 초부터 중국 내 마스크 생산공장들이 가동을 시작한다지만, 지금과 같은 불안정한 상태는 쉽사리 진정될 것 같지 않다. 우한 일대에 다수 위치한 생산설비의 즉각적인 가동이 쉽지 않고, 생산이 되더라도 수요가 훨씬 클 것이기 때문이다.
매집된 마스크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중국으로 가지 않고 한국 내에 있다는 점도 변수다. 일각에선 한국에서 확진자가 속출할 경우, 마스크 부족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마스크를 매집한 이들이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 폭리를 취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백신이 개발될 것으로 기대되는 3개월 안까지는 품귀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한 유력 정치인이 다녀간 뒤 비치했던 마스크를 슬쩍 치웠다는 어느 구청 이야기는 일시적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서울시는 1000억 원 가까운 예산을 확보하고도 물량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다른 지자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일선 지자체 가운데 충분한 양의 마스크를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허생전’을 떠올리는 매점매석 가운데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마스크 가격은 KF94 기준 50개 들이 2만원도 되지 않던 것이, 3만원, 5만원, 7만원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비교적 낮은 가격에 올라온 마스크는 십중팔구 발송이 이뤄지지 않는다. 결제를 하고 자도 다음날 아침이면 물량부족으로 주문이 취소됐다는 메시지가 와 있는 것이다. 가격은 다시 훌쩍 뛰어 있다.
정부는 기획재정부·식약처·공정위 등 범정부차원의 대책마련에 돌입했다. 당장 31일부터 현장단속을 실시하고 내주까지 고시를 제정해 폭리를 취할 목적으로 마스크를 매점매석한 업자를 단속할 예정이다. 경기도 역시 특별사법경찰단을 동원해 도내 마스크 판매·제조업체에 대한 즉각적인 현장점검을 벌인다. 이미 수백에서 수천만장씩 마스크를 매입완료한 업자들에게 실효성 있는 제재수단이 될지 의심하는 시선도 적지 않지만, 계약된 물량 이후 생산되는 제품 가격은 다소 안정화될 전망이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