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권대희 사건' 전문감정과 정반대 결론... '봐주기 수사' 의혹

      2020.02.01 08:50   수정 : 2020.02.01 12:3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권대희 의료사고 사망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전문기관들의 감정회신을 배척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기관이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간호조무사가 30분가량 단독으로 지혈한 행위를 두고 ‘의사의 지배하에 의료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답변했지만, 이를 묵살한 것이다.

권씨 유족 측으로부터 모든 자료를 제출받고도 13개월여 동안 수사를 끌어온 검찰이 병원 측을 봐주기 수사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1일 파이낸셜뉴스가 단독 입수한 ‘불기소이유통지서’를 분석한 결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강지성)는 간호조무사들의 ‘무면허 의료행위’와 의료진의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방조’ 혐의를 불기소 처분하며 다수 전문기관이 제출한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 의료사고 수사 성패를 가르는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가 기소조차 되지 않음에 따라, 법원에서 기소된 모든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병원 측은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기관 의견 배제... "이럴 거면 왜 받나"
무면허 의료행위가 중요한 이유는 의료법이 형법에 비해 의료사고 당사자에게 상대적으로 무거운 처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법에 따르면 무면허 의료행위 당사자가 속한 병원은 '의료업 정지'와 '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또는 폐쇄' 명령을 받을 수 있다. 무면허 의료행위를 교사 또는 방조한 자도 1년 이내의 '면허자격 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담당 수사검사인 성재호 검사가 간호조무사들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모두 10가지에 이른다. 이를 요약하면 다시 2가지로 추려지는데 다음과 같다.

△간호조무사들의 지혈행위는 보조의사 신모씨의 지혈행위의 연장으로, 의사의 지시·감독 아래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는 것 △권씨에 대한 지혈이 반드시 의사만 해야 하는 고도의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결론이 전문 감정기관이 내놓은 답변과 어긋난다는 점에 있다. 유족 측에 따르면 고소인인 권씨 유족과 고소인 측 대리인, 경찰 광역수사대는 서로 다른 시점에 6개 기관으로부터 모두 12차례 감정회신을 받았다. 검찰은 경찰이 의료진을 무면허 의료행위 등의 혐의로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음에도 사건을 재수사하겠다며 유족으로부터 두 차례나 관련 자료를 모조리 넘겨받았다.

이번 기사에선 검찰에 제출된 감정회신을 바탕으로, 검찰이 불기소 처분의 첫 번째 근거로 든 ‘간호조무사에 대한 의사의 지시·감독이 있었다’가 합당한 판단이었는지를 살핀다.


■같은 사실 다른 결론... 고무줄 해석
경찰청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의뢰해 2018년 2월 받은 감정회신에서, 중재원은 ‘모두 자리를 비운 동안 간호조무사가 단독으로 지혈하였다면, 의사의 지배하에 의료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려움’이라고 답했다. 실제 수술실 CCTV에 잡힌 두 간호조무사가 수술실로 번갈아 들어와 홀로 권씨를 지혈한 시간은 33분여에 달했다.

중재원은 또한 ‘수술 중 지혈 행위는 일반 환경의 지혈과 달리 의료 행위에 포함’된다며 ‘의사의 감독이 없는 상태에서 간호조무사에게 지혈을 맡기는 것은 적법한 행위로 볼 수 없음’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담당 수사검사인 성재호 검사가 병원 의료진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하며 작성한 공소장에서도 인정한 부분이다. 성 검사는 공소장에서 해당 성형외과의 수술방식을 설명하고 있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마취과 의사가 환자를 마취하면 원장이 환자의 뼈를 자른다. 다음으로 보조의사가 원장이 절골까지만 진행한 부위를 세척한 뒤 구강 내 절개부위를 봉합하고, 얼굴 부위에 붕대를 감으면 수술이 종료된다. 당혹스러운 점은 이 과정이 한 수술실이 아니라 여러 수술실에서 연달아 벌어진다는데 있다. 권씨가 수술을 받던 날도 3곳에서 동시 수술이 진행됐다.

검찰 공소장은 ‘수술이 연이어 시행되었고 이러한 수술 진행 방식에서는 수술에 관여하는 의사들이 각 환자의 출혈 정도 등을 고려한 건강 상태에 대해 적절한 관리를 할 여유 없이 연속적으로 수술만 진행하게 되는데 이는 위 성형외과 원장인 피고인이 고안한 방식’이라고 적고 있다. 이 같은 수술이 이뤄지는 이유에 대해서도 ‘단시간 내에 많은 환자의 수술을 시행하기 위해’라고 적어, 해당 병원의 수술방식과 이 방식 속에서 의료진이 각 환자에 대해 적절한 관리를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무면허 의료행위 불기소 '옹색'
검찰은 놀랍게도 이 같은 논리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기소하는데만 활용할 뿐, 무면허 의료행위를 인정함에 있어서는 적용하지 않았다. 도리어 불기소이유통지서에선 33분 동안이나 번갈아가며 권씨를 홀로 지혈한 간호조무사들이 다른 수술실에 있던 의사의 ‘구체적인 지시·감독’ 아래 있었다고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펼쳤다.

경찰청이 누리메디컬컨설팅에 질의한 결과에서도, ‘간호조무사 혼자 수술방에서 피해자의 수술부위를 지혈했다면 면허에서 허가한 진료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된다는 답이 나왔다.

검찰에 제출된 전문기관 감정회신 12건 가운데 성 검사가 불기소이유통지서에서 펼친 논지와 주요 의견을 같이하는 문건은 찾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성 검사는 간호조무사들이 의사가 없는 동안 지혈한 시간이 약 35분 정도로 권씨에 대한 전체 지혈시간에 비추어 그다지 길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보조의사가 수술실 밖으로 나오기 전에 간호조무사에게 어느 부위를 압박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지시한 것으로 보이는 점, 간호조무사가 할 일이 얼굴을 눌러 지혈하는 것 외에 달리 없었다는 점, 인접한 수술실에 3명의 의사가 있었다는 점, 의사가 지혈행위의 개시와 종료를 결정한 점 등을 들어 ‘구체적인 지도·감독’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 본지 보도에서 보듯, 이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적지 않은 대법원 판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검찰의 간호조무사에 대한 무면허 의료행위 불기소 처분은 그리 타당해보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기자가 의견을 구한 한 변호사는 "이 사안의 경우와 같이 뼈를 절개하는 수술은 환자의 생명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위험성이 높아, 수술 중의 지혈행위는 외과 중 시술의 연장행위로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간호조무사가 다른 방에 있는 의사의 지시만으로 지혈을 하게끔 했다면, 대법원이 의료행위로 규정한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있는 행위'에 해당해 명백히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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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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