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면허 의료행위' 확답에도 검찰은 불기소... "뭐하는 조직인가"

      2020.02.01 14:50   수정 : 2020.02.24 10:2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체중 45kg 성인여성 한 명의 몸속에 있는 혈액 총량은 3500cc 정도다. 성형외과 수술 중 3500cc의 피를 흘려 사망에 이른 한 청년이 있다. 병원은 당시 세 개의 수술실을 열어놓고 동시에 수술을 했다.

간호조무사들은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피로 흥건한 바닥을 밀대로 여섯 차례 닦았다. 사이사이 들어온 마취과의사는 청년이 얼마나 피를 흘렸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집도하기로 했던 원장은 청년이 위험한 상황에 접어들던 대부분의 시간을 수술실 밖에 있었다. 퇴근시간이 되자 의사들은 청년을 두고 병원을 나섰다. 통상 회복실로 가야할 시간을 7시간이나 넘겨서야 119 신고가 접수됐다. 청년은 중앙대학교 병원으로 이송된 뒤 49일을 버텼지만, 끝내 일어서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25살 꽃다운 나이던 고 권대희씨 이야기다.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수사는 3년을 넘겼다. 처음 22개월은 경찰이, 다음 14개월은 검찰이 수사했다. 길고 지난한 수사가 이어지는 동안 유족은 민사1심 재판에서 병원 측 배상책임을 80% 인정받았다. 병원은 항소하지 않았다.

수술실 CCTV와 의무기록지를 입수한 것도, 일부 번복되긴 했지만 의료진의 증언을 얻어낸 것도 모두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였다. 이씨는 아들이 차디찬 수술대에 누워 피를 흘리는 장면을 수백 차례나 돌려보며 의무기록지에 적힌 사실관계와 꼼꼼히 비교했다. 병원 측 과실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민사 승소판결 뒤엔 이씨의 공이 컸다.

그런 이씨가 울고 있다. 지난해 11월 검찰이 병원 관계자들을 기소하면서다. 검찰은 수사 성패를 가를 핵심 혐의를 불기소처분하고, 업무상 과실치사 등 처벌이 크지 않은 혐의만 기소했다. 수사 막판에서야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모습도 보였다. 미심쩍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어느 언론도 이 사실에 주목하지 않았다. 성탄절을 이틀 앞둔 지난해 12월 23일, 이씨는 홀로 검찰을 찾아 항고장을 접수했다.

권씨 사건을 수사한 담당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강지성) 성재호 검사다. 성 검사는 경찰 광역수사대가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을 재수사하며 이씨로부터 관련 자료를 ‘한 장도 빠짐없이’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씨는 전문기관의 감정회신 등 확보한 자료 모두를 2차례나 제출했다. 14개월여에 걸친 재수사의 결론은 본지가 앞서 보도한 그대로다.

기자는 최근 이씨를 만나 성 검사가 작성한 불기소이유통지서와 공소장, 전문기관의 감정회신 등을 확인했다. 과거 이씨를 취재하며 수술실 CCTV와 각종 분석자료 등을 확인한 바 있는 기자는 도무지 검찰이 내놓은 결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전문기관의 감정서들이 도출한 결론은 물론, 경찰의 기소의견 송치까지 무시한 채 내린 결론이었다.


■‘이숙영’은 누구?... 틀렸다면 "창피한 일"
기자는 불기소이유통지서를 분석하며 충격적인 사실 한 가지를 발견했다. 검사가 간호조무사들의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를 불기소한 근거로 제시한, ‘진료기록감정 촉탁 내용(2018. 9. 19.자 이숙영 작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회신을 작성한 건 이숙영이 아니다.

같은 일자에 작성된 같은 제목의 문서는 있다. A대학병원 성형외과 전문의 B씨가 작성한 답변서다. 성 검사는 불기소이유통지서에서 해당 문건을 바탕으로 ‘뼈 출혈이 지속되면 주로 오랜 시간 압박을 하여 지혈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며, 이러한 지혈의 경우 특별한 술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고 출혈이 지속되더라도 봉합을 시행하고 수술을 종료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간호조무사의 지혈행위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회신을 들여다보면 ‘숙련된 의사일지라도 주요 혈관 손상이 발생한 경우라면 지혈이 어려울 수도 있다’, ‘본 사건 수술 중 대량 출혈이 된 것은 이미 기술된 사실일 것으로 생각된다’, ‘지혈이 되지 않거나 혹은 적극적인 수혈이 필요한 경우에는 상급병원으로의 전원을 고려해야 할 것, 이러한 조치는 간호조무사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다출혈은 있는 상태’ 등 간호조무사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따질 수 있는 근거가 훨씬 더 많다.

검찰은 이 가운데 지엽적인 부분만을 따로 떼어내 무면허 의료행위를 불기소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결론을 정해두고 필요한 근거만 발췌한 게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또한 문서 작성자의 이름이 뒤바뀐 것이 사실이라면 성재호 검사는 사건분석과 검토가 허술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기자와 함께 사건을 검토한 다수 법률가는 “상징적인 의료사고 사건인데다 상당한 시간 동안 재수사까지 했는데 이렇게 허술한 실수를 저지른 건 창피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보건복지부 “무면허 의료행위 맞다” 답변에도

한편 검찰은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를 불기소하는 핵심 근거로, 권씨에 대한 지혈이 반드시 의사만 해야 하는 고도의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적지 않다.

특히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대부분의 전문기관 감정회신에서 ‘권씨에 대한 지혈은 간호조무사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이란 취지의 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보건복지부는 경찰 수사관과 유족, 유족 측 대리인이 서로 다른 시점에 질의한 것에 ‘수술부위에 대한 지혈술은 의사가 직접 수행해야 할 의료행위’라며 ‘간호조무사가 이를 수행하는 것은 무면허의료행위’라고 결론 내렸다.

보건복지부는 또한 ‘의사가 간호사에게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진료행위 자체를 하도록 지시하거나 위임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으므로,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나 위임을 받고 그와 같은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인용해 해당 사건이 의료법 위반이란 답을 내놨다. 권씨 수술이 문제 병원의 평균적인 수술보다 출혈량이 많았고, 시간 역시 많이 걸렸으며, 의료진 모두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보건복지부 외에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화여자대학교병원·순천향대학교병원 등 다수 감정기관이 비슷한 취지로 감정회신했다.


■“대한민국 검찰, 뭘 하는 조직인가?”
성재호 검사가 작성한 검찰의 불기소이유통지서에선 전문기관 감정회신 내용 가운데 극히 일부가 발췌돼 불기소 처분의 근거로 활용됐다. 이씨는 이에 불복했다. 항고사건은 지난 8일 서울고등검찰청 김호영 검사실에 배당됐다.

이와 관련해 사건을 검토한 한 변호사는 “의료법은 국민에게 높은 수준의 의료 혜택을 제공하고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데 그 제정 목적이 있다”며 “의사의 행위로 인하여 환자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결과에 이르렀을 경우에는 의료법상의 위법이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서 동일한 사안으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할 책무 또한 의료법이 규정한 것”이라고 법 취지를 설명했다.

한편 대검찰청 홈페이지에는 검찰조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검찰은 우리 사회의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안녕과 인권을 지키는 국가 최고 법집행기관으로서, 각종 범죄로부터 국민 개개인과 사회 및 국가를 보호하는 것을 기본 임무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검찰은 범죄를 수사하고, 사법경찰관리를 지휘·감독하며, 공소(公訴)를 제기·유지하고, 재판의 집행을 지휘하는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2018년 겨울, 국회 앞에서 100일 동안 1인시위에 나섰던 이나금씨는 올해 검찰청 앞에서 다시 1인 시위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주 기자를 만나겠다며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 장례식장까지 찾아온 이씨는 기자를 붙들고 이렇게 말했다.

“검찰은 대체 뭘 하는 곳인가요?”
기자는 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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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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