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은 유세장 아닙니다' 정치인들에 학교측 "덕담만"
2020.02.03 07:30
수정 : 2020.02.03 07:30기사원문
(서울=뉴스1) 이진호 기자 = "덕담만 하고 가면 참 좋은데 따로 말씀드리기도 그렇고…"
올해도 학교 졸업식을 찾아오는 '높으신 분'들이 있다.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이다. 하지만 학교는 높으신 분들이 반갑지 만은 않은 모습이다.
졸업 시즌을 맞아 학교가 얼굴 알리기에 나서려는 정치인들로 고심하고 있다. 졸업식의 문을 두드리는 정치인이 줄을 잇지만 선거권 연령 하향과 다가온 총선으로 졸업식이 대형 유세장으로 변질될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3일 A고등학교 교장은 "(만18세로) 선거권 연령이 내려가며 국회의원과 시의원들의 학교 방문이 더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만18세로 선거권 연령이 하향되는 만큼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러시가 더 가속화될 거라는 의견이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월3일부터 관내 초·중·고등학교 다수가 졸업식과 종무식을 연다. 특히 고등학교의 경우 오는 14일까지 268개 학교가 졸업식을 개최한다.
실제로 졸업식 등 학생들이 모이는 학교 행사는 정치인들에게는 일종의 '대목'이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관내 학교를 찾아 기념촬영을 하고 이를 블로그에 올리는 등 졸업식 방문은 이미 오랜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학생들이 주인공이 돼야 할 졸업식에서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문제다.
A 교장은 "학생들에게 가벼운 인사나 인생선배로서의 덕담은 괜찮지만 오버(선거운동)을 하게 되면 역효과가 난다"며 "덕담 정도를 요청하고 있지만 자기 PR을 하는 경우에도 학교 입장에서 이를 제지하기는 사실상 힘들다"고 토로했다.
가족과 친구들의 축하가 중심이 돼야 할 졸업식장이 정치인들의 유세장으로 변질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경쟁 정당의 불만까지 겹쳐 피로감을 느낀 학교들은 아예 정치인 방문을 막으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B 중학교 교장은 "과도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면 반대쪽 정당에서 클레임을 거는 경우가 있다"며 "이럴 바에는 차라리 모든 초대 요청을 거절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특히 올해는 4·15 총선이 있는 만큼 많은 예비후보들이 학교를 찾는 점도 문제다.
A 교장은 "현역 의원뿐 아니라 이제는 예비후보들도 학교를 찾는다"면서 "워낙 후보가 여러 명인 만큼 모든 정치인의 학교 방문을 허용하면 학교 현장은 혼란에 빠진다"고 말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권본부장은 "국민들 대다수는 교육과 정치는 구분돼야 한다고 믿는다"면서 "완벽히 정치와 차단할 수는 없지만 정치인들이 졸업식을 선전이나 출마의 도구로 삼는 데 대한 거부정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의 파도가 교육현장에 들어오지 않도록 교육당국과 선관위가 룰(규제나 가이드라인)을 정확히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