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잘 살자는 욜로족..나중에 잘 살자는 노머니족
2020.02.04 16:18
수정 : 2020.02.04 16:18기사원문
남들과 같은 시간에 일할 필요 있나요? 유통회사 7년차 김대리
소비 문화 패턴이 양극화되고 있다. 최근 들어 가장 대표적 소비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은 '욜로(Yolo)족'이다. '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인 욜로는 '인생은 한 번'이라는 뜻으로, 미래 또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 현재 자신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말한다.
물류업계에 7년째 종사하고 있는 김 대리는 일반적 직장인들과 업무시간이 다르다. 한 달에 3주는 주6일 근무를 하고, 회사가 상대적으로 한가한 매월 둘째 주에는 주2일 근무만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해외여행 가기'란 인생 목표를 위해서다. 김 대리는 "이직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업무패턴을 맞춰주겠다는 회사를 찾았다. 마흔이 되기 전에 100개국을 다니고 나만의 여행 책을 쓰는 게 버킷 리스트였는데 지금 회사로 이직한 덕분에 그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고 웃으며 답했다.
AM 8:30 김 대리의 작은 원룸은 여전히 한밤중이다. 김 대리의 업무시간은 요일만 남다른 게 아니다. 일반적 직장인들이 '9 to 6(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로 일한다면, 김 대리는 '1 to 10(오후 1시부터 10시까지 근무)'으로 일한다. '저녁형 인간'인 김 대리는 이직하면서 업무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회사와 이야기를 끝냈다. 김 대리는 "내가 선호하는 업무 스케줄에 맞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봉도 낮아졌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꿈꿔왔던 것을 하고 싶어서 선택했다. 당장 차를 사고 전세금을 마련하는 것보다 나에겐 '여행'이 중요하다"며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PM 12:00 출근 전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온 김 대리. 항상 가던 단골 브런치 카페에 왔다. 회사 근처에 있는 브런치 카페는 손님도 많지 않고 분위기도 좋아 비싸도 1주일에 4~5회는 간다. 오늘 브런치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은 다음 여행을 함께 갈 동행이다. 지난가을 그리스 여행을 갔을 때 우연히 만난 세살 차이 동생과 마음이 맞아 '여행 파트너'가 된 것. 이번 여행지는 다이버들의 천국 필리핀 보홀이다. 김 대리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며 "최근에 국내 한 항공사에서 보홀로 가는 직항노선을 개항했다. 최근에 다이빙에 푹 빠졌는데 그 소식을 듣고 바로 여행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PM 10:30 대부분의 직장인이 집에 들어갈 시간에 김 대리는 퇴근한다. 출근시간대가 달라지며 평일에 친구들을 만나는 건 쉽지 않아졌다. 그러나 김 대리는 새로운 친구들을 얻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G클럽의 단골이 된 것.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평일 늦은 밤에 들르게 되면서 클럽 직원이나 다른 단골 손님과도 친구가 됐다. 최근엔 G클럽 '인싸(인사이더)'들의 카톡방에 초대돼 진성 멤버로 인정받기도 했다. 김 대리는 "모두가 같은 길을 걸어갈 필요는 없다. 일반적 인생을 사는 친구들에 비해 내가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저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길을 걸어가면 되는 것 같다"며 "인생 한 번 살지, 두 번 사나? 욜로~"라며 웃어 보였다.
No money
마흔 전에 서울에 집 사는게 목표입니다! 4년차 직장인 최 주임
저성장과 양극화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새롭게 조명받는 소비 문화가 '노머니족'이다. 말 그대로 '돈 없어(No money)'라는 생각으로 사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수입의 대부분은 저축하고 철저한 내핍 생활을 추구한다. 노머니족은 청년실업난과 저성장 등으로 젊은층의 소비력이 위축되면서 자연스레 부각됐다.
아르바이트포털 알바몬에 따르면 2030세대 성인남녀 10명 중 4명(40.4%)이 자신을 '욜로족'이 아닌 '노머니족'이라고 답했다. 특히 30대의 절반 이상(50.9%)은 자신을 노머니족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결혼한 최 주임 부부는 다른 신혼부부들과는 다르다. 당장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기는 풋풋한 신혼부부라기보다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진군하는 동지에 가깝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다. '흙수저로 태어났지만, 마흔 전에 서울에 우리 집을 사는 것'. 경기 하남의 작은 전셋집에서 살고 있는 이 부부의 지상 과제는 '서울 입성'이다.
AM 6:00 휴대폰 진동 알람에 최 주임이 일어난다. 상대적으로 직장이 가까운 아내가 조금 더 잠을 자게 하려고 소리나는 알람은 맞추지 않는다. 일찍 일어난 최 주임은 출근 준비와 함께 아내와 자신의 점심 도시락을 싼다. 최 주임은 "결혼하면서 점심 도시락은 내가, 저녁 밥은 아내가 하기로 정했다"며 "대학 동창이 '너와 똑같은 직장 동료가 있다'며 아내를 소개받았는데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이 똑같아서 '차라리 이럴 거면 같이 살면서 같이 모으는 게 빠르겠다'며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했다"고 수줍게 이야기했다.
AM 7:00 최 주임은 추운 겨울에도 자전거를 탄다. 아내는 집에서 직장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지만, 자신은 5호선 상일동역까지 갈 방법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도시락 통을 대학생 때 산 낡은 백팩에 넣으며 최 주임은 "자전거가 운동이 안 된다고 하는데, 매일같이 타면 건강해지고 좋다. 돈 아껴서 오래 살 건데 건강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웃으며 말했다.
PM 12:00 텅 빈 사무실에 최 주임 혼자만 남아있다.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다. 최 주임에게는 최고의 자기계발 시간이기 때문. 대부분의 직원이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 최 주임은 아침에 싼 도시락을 먹고 부동산 재테크 공부를 시작한다. 카페 따윈 가지 않는다. 그는 "믹스커피는 건강에 좋지 않아서 안 좋아하는데, 회사 휴게실에서 아메리카노도 내려 마실 수 있어서 애용한다. 하루에 4000원짜리 커피 한 잔 안 마시면 1년에 150만원 가까이를 아끼는 셈"이라고 말하며 눈을 찡긋한다.
PM 8:00 최 주임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아내와 오붓하게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 외부 약속은 거의 나가지 않는다. 아내와 집에서 저녁을 먹고 산책을 즐긴다. 산책로는 주로 동네 마트들이다. 최 주임은 "동네 할인마트가 많은데, 품목별로 미묘하게 가격 차이가 있다"며 "대부분 끼니를 집에서 해결해서 장 보는 비용이 적지 않은데, 품목별로 저렴한 곳을 미리 알아두면 알뜰하게 장을 볼 수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전문가들은 양극단에 있어 보이는 욜로족과 노머니족을 '동전의 양면'이라고 말한다. 전혀 다른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어려워지는 경제 상황과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나온 각자의 해답이라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는 소비 형태에서 다양한 양상을 띤다. 소비를 즐기는 유형도 있는 반면 아끼려는 유형도 있다"며 "취업난이 시작되고 경제적으로 힘든 20~30대들이 아끼기 시작했다. 소비하는 유형도 일상생활에서 가능한 아껴서 모은 돈으로 자신이 원하는 소비를 한다"고 말했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