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수송보국'.. 창업정신은 어디에

      2020.02.19 17:38   수정 : 2020.02.19 19:47기사원문
"대한항공이 방위산업으로 돈 벌었다는 얘기를 들어서는 안된다. 적자를 보더라도 품질에 만전을 기해라."

한진그룹 창업주 고 조중훈 명예회장이 40년 전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 임원들에게 당부한 그의 지론이다. 당시 정부의 한국 최초 제트전투기 '제공호' 개발에 동참한 대한항공은 사운을 걸고 막대한 투자에 나섰고, 1982년 본격 양산 이후 거듭되는 손실에도 제작을 이어갔다.

수송을 통해 국가에 기여한다는 '수송보국'의 한진그룹 창업이념이 국가가 없으면 방위산업도 없다는 '방산보국'으로 이어졌기에 가능했다.

현재까지 대한항공은 자주국방의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다.
다만, 기업의 희생이 요구되는 방위사업은 안정된 경영권에서만 존속될 수 있다. 단기 성과주의를 앞세우면 존립 자체가 불투명해진다. 실제 한진그룹이 경영권 위협에 노출되면서 대한항공 방위사업의 심장부인 항공우주사업본부가 먹잇감이 되는 등 그룹 창업정신이 위기를 맞고 있다.

영공수호의 조력자 '대한항공'
대한항공은 국내 최대의 국적 민간 항공사이자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을 선도하는 방산업체이다. 부산 강서구에 위치한 대한항공 김해테크센터를 통해 영공 방위 핵심전력인 전투기와 헬기 등의 정비, 생산을 맡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맹국 미국의 전략자산도 대한항공의 몫이다. 대한항공은 태평양 지역의 유일한 미군 항공기 종합 정비창 업체다. 1983년 이후 미국 공군 전투기의 창정비를 수행하고 있다. 2011년에는 미국 공군으로부터 약 4억달러 규모의 F-15 전투기 성능 개량 사업을 수주해 2016년까지 총 60대의 성능 개량과 정비를 담당했다. 아파치 롱보, 블랙호크, 시누크 등 기동 헬기 정비도 대한항공의 영역이다.

지난 2014년 도입된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F-35A도 마찬가지다. 대한항공은 정비업체 컨소시엄 '팀 ROK'의 핵심 멤버로 해당 기종의 정비 권한을 갖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500MD 무인헬기(KUS-VH)의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국방비를 줄이고, 위험 지역에서 유인헬기와 조종사 손실을 막기 위해 퇴역을 앞둔 500MD 헬기를 무인화하는 개발사업으로 올해 양산을 앞두고 있다.

대한항공은 하이브리드 엔진을 탑재해 2시간까지 운용이 가능한 소형 드론도 최근 개발했다. 미래 무인기 시장에 대비해 스텔스 무인기 기술시험기 개발을 완료하고 핵심기술 고도화도 수행 중이다. 또한 근접 감시용 및 사단 정찰용 무인기 개발로 자주국방과 군 현대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무궁화호, 나로호 3호 등 국내 인공위성 개발에선 대한항공의 미래 첨단기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난해 조원태 회장 취임 이후 대한항공 방위사업 역량은 한층 강화되고 있다. 향후 다양한 기종의 전투기·헬기의 성능 개발을 위해 기술 인력 확충과 시설 현대화를 적극 추진 중이다. 추가로 투입되는 비용만 연간 수백억원 규모로 전해졌다.

외부세력에 위협받는 방위사업
한국 국방력과 직결되는 대한항공 방위사업의 구심점은 지난 1975년 출범한 항공우주사업본부이다. 연간매출은 최대 1조원에 육박한다. 지난 2017년에는 영업손실 324억원으로 일시적 경영악화를 겪었지만, 2018년 흑자달성으로 안정궤도에 재진입했다.

하지만, 한진그룹 지주회사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을 촉발한 KCGI는 대한항공의 항공우주사업 및 항공정비 부문을 자회사로 분리 후 상장할 것을 요구했다. 명분은 상장을 통한 신규 투자금 확보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회사의 장기 발전을 위해 불필요한 유휴자산과 국내 고용창출 없는 자산 매각도 제안했다. 그러나 대한항공 김해 테크센터는 단순한 여객기 정비센터가 아니라 군사보안 1급의 국가 시설이다. 아시아태평양지역 미국 공군 전투력 유지의 핵심 시설이기 때문이다.

또한, 방위산업 및 미군과 거래하는 방산업체의 특성을 감안하면 신뢰관계가 한번 무너지면 회복 불가능이다. 업계에선 한마디로 항공업과 방위산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제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과 3자 연합을 구성한 KCGI가 한진칼의 경영권을 쥐게 될 경우 대한항공 방위사업은 단기 성과주의에 내몰려 갈림길에 직면할 것이란 우려가 짙다.

업계 관계자는 "방위사업은 오랜 기간 인력과 자금을 대거 투자해야 개발 및 성과를 거둘 수 있고, 이를 통해 국가에 기여하는 사업"이라며 "당장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사모펀드가 책임질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대한항공의 방위사업이 흔들리면 국가 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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