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적중 예견서 '어둠의 눈' 실제와 비교해보니

      2020.02.24 10:52   수정 : 2020.02.24 15:36기사원문

【베이징=정지우 특파원】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최초 발생. 치명적 바이러스 ‘우한 400’. 생화학 무기 프로그램. 바이러스 연구소.

1981년 발간된 딘 쿤츠의 소설 ‘어둠의 눈’의 키워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중국을 벗어나 세계로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이 소설이 일부 해외외신에서 주목받은 데 이어 한국에서도 뒤늦게 소설의 예언적 사실이 조명을 받고 있다. 현재 상황과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 주목을 받는 배경이다.



이미 인터넷상에선 ‘예견서’로 거론되고 있다. 일부 외신은 이 같은 현상을 보도하고 네티즌들은 다시 이를 재인용하며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40년 전의 소설이 코로나19 사태의 예견서가 될 만큼 얼마나 맞아 떨어지는 것일까.

■치사율 100%의 생화학무기 '우한-400'
우선 이 소설의 내용부터 보자. 어둠의 눈은 리첸이라는 이름의 중국 과학자가 자국의 새로운 생화학무기에 관한 정보가 담긴 디스크를 가지고 미국에 입국한다.

이 무기는 우한 외곽에 있는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는 의미로, ‘우한-400’으로 불린다. 하지만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퍼트리게 되고 미국에서 의문의 사망사건이 잇따라 일어난다. 치사율은 100%다. 인간에게만 영향을 미치고 1분 이상 인간의 몸 밖에 생존할 수 없다. 일단 전파된 후 살상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면 자연 소멸되므로 최상의 무기라고 불린다.

소설의 주인공 크리스티나 에반스도 아들 대니를 잃는다. 대니는 캠핑 중 우연히 우한-400에 노출된 군사시설에 감금된 이후 사망하게 된다. 에반스는 1년 동안 고통 속에서 보내다가 대니가 보낸 메시지를 토대로 죽음의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
소설의 핵심은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최초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와 바이러스의 발원지역은 현재까지 일치한다. 하지만 세부적인 장소는 아직 정확히 확인된 것이 없다.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와 화난수산시장을 놓고 의견이 갈린다. 중국 정부는 연구소 유출 주장에 대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다.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유출VS"터무니 없는 소리"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유출설을 처음 거론한 것은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다. 이 매체는 지난달 25일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병원체를 연구하는 시설을 지난 2017년 우한에 세웠을 때 ‘바이러스가 연구소 밖으로 유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중국이 세운 국립생물안전성연구소는 병원체 위험도 최고수준인 4급 생물안전성표준을 충족토록 설계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54곳에 실험실이 있지만 중국에선 유일한 ‘수퍼 실험실’이다. 4급은 에볼라 바이러스 등을 연구하는 곳이다. 2003년 발생해 전세계에서 774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도 3급 병원체에 불과하다.

미국 공화당 톰 코튼 상원의원은 이 같은 의심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는 청문회에서 바이러스가 중국의 생화학적 프로그램에서 유출됐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중국은 즉각 반박했다. “미친 소리”라는 원색적 비난도 가리지 않았다. 오히려 홍콩과 러시아 일부에선 미국을 원흉으로 지목했다. 미국이 중국이나 아시아인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생화학무기가 코로나19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중국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황옌링이 코로나19에 최초로 감염돼 사망했으며 이를 화장하던 장례업체 직원을 거쳐 확산됐다는 소문이 퍼졌다.

영국 의학 전문지 랜싯에 게재된 논문에는 우한 진인탄 병원에 입원한 코로나19 확진 환자 41명을 연구한 결과 첫 번째 환자가 시장을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는 글이 실렸다. 첫 번째 감염자와 이후 환자들 간의 역학적 연관성도 없었다.

미국 조지타운 대학의 대니엘 루시 교수는 “코로나바이러스가 화난수산시장에서 유출되기 전에 다른 곳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각에선 중국 군사의학원 생물공정원이 4급 실험실을 관리하고 있다는 등의 얘기도 돌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사스 바이러스도 중국 연구소에서 유출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내에서도 들리는 '우한 질병통제센터 유출' 주장
중국 내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들렸다. 중국 화난이공대 소속 샤오보타오 교수 등은 최근 정보공유 사이트인 ‘리서치게이트’에 올린 보고서에서 코로나19가 우한시 질병통제센터(WHCDC)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화난수산시장에서 약 280m 떨어져 있는 WHCDC에서 연구를 위해 박쥐 605마리를 포함해 여러 동물을 데려와 실험실에 보관했는데,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유출돼 전파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30여km 떨어진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보다 가깝다.

중국 과학기술부는 지난 15일 “실험실, 특히 바이러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 생물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해 이러한 의혹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중국 과학원 시솽반나 열대식물원은 화난농업대, 베이징 뇌과학센터와 함께 12개국의 코로나19 유전자 샘플 93개를 분석해 결과 화난수산시장이 유일한 발원지가 아닐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광둥성 등 다른 지역에서 화난수산시장으로 유입돼 대규모로 전파됐을 가능성이다.

반면 중국은 이런 모든 추측에 대해 “유언비어”라고 일축하고 있다. 발원지는 우한의 화난수산물시장이며 박쥐에서 천산갑 등 매개체를 거쳐 인간에게 전염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 과학자들도 “음모론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중국 편에 섰다. 미국 콜로라도주립대학 소속 병리학자 찰스 캘리셔 등 27명의 과학자들은 “코로나19가 야생동물로부터 유래됐다는 것이 과학계의 압도적 결론”이라는 성명을 냈다.

다만 중국은 최초 감염자와 전염 경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내놓지 않고 있다. 톰 코튼 의원은 이를 “중국의 거짓말”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존재 여부 외엔 확인×
따라서 종합하면 우한에 바이러스 연구소가 존재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아무것도 확인된 사항이 없다.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화난시장, 그 외의 지역 등 발원지가 어디인지 확정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매개체도 제대로 모른다. 천산갑과 코로나19의 게놈 서열이 99%일치한다는 논리로 ‘가장 유력한’ 동물로 지목되는데 그친다. 박쥐→천산갑(밍크, 오소리, 대나무쥐, 뱀)→인간 경로다. 더욱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생물학무기를 만드는 곳도 아니다. 1956년 설립된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는 건강, 질병, 농업 등을 연구한다고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다.

사망률과 바이러스의 외부에서 생존력도 확연히 다르다. 소설은 일단 감염되면 무조건 사망에 이르고 바이러스가 외부에선 1분도 존재하지 못한다고 그리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경우 매일 수치가 변한다는 것을 감안해도 사망률은 평균 2.5%(중국 통계의 신뢰성은 고려하지 않음) 수준이다. 사스는 10%,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는 19%, 에볼라바이러스는 42%다. 3급 병원체보다 사망률이 떨어진다.

다만 코로나19는 연령에 따라 사망률이 다르긴 하다. 어린이는 경미한 증상이지만 70~80대는 사망률이 8~9%까지 올라간다. 그래도 소설과 사망률은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

외부 생존율도 소설과 다르다. 미국 CNN방송은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는 금속, 유리, 또는 플라스틱 표면을 포함한 무생물 표면에서 9일 동안 생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연구결과를 전했다. 코로나19의 전염력이 강한 이유도 비말(침방울) 외에 손이나 물체를 통해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기 때문이다. 전파한다는 것 자체가 바이러스의 생존을 의미한다.

백신이 없다는 것은 동일하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완치를 받고 퇴원하는 환자가 잇따르고 있다. 각국 의료진은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치료제나 전통 탕약 등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중이다. 첫 발생지역도 소설은 미국을 지목하지만 실제는 우한에 집중됐다.

오히려 SCMP는 소설가의 뛰어난 지식이 우연한 공통점을 만들어 냈다고 지목했다. 쿤츠는 미국의 베스트셀러작가이자 스릴러 소설의 대가 평가받는 인물이다. 따라서 약간의 사실적인 정보를 이용해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고 SCMP는 전했다.

중국 관련 전문 작가인 영국의 폴 프렌치는 중국과 바이러스를 이용한 전쟁 연관성은 제2차 세계대전 때로 올라간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일본인들이 중국에서 생화학무기 연구를 한 것은 확실하다”면서 “주로 하얼빈에서 활동한 731부대와 연관되어 있지만 일본인들은 우한에도 생화학무기를 보관했다. 이는 일본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한 홍콩 출판인은 바이러스 관련 스릴러를 쓰기에 중국 우한은 매우 좋은 배경이라고 했다.
그는 “우한을 중심으로 양쯔강이 동서로 흐르고 고속철도가 남북으로 달린다”면서 “허구든 진짜든 전염병이 퍼지기에 이처럼 좋은 장소가 없다”고 전했다.

실제 우한은 중국 중부의 정치·경제·문화·교통의 요충지다.
양쯔강과 그 지류인 한수이강의 합류점에 위치해 수로 교통도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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