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마스크 수십만장 쓸어담아…'우리는 1장도 귀한데'
2020.03.10 09:41
수정 : 2020.03.10 18:14기사원문
(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 = 정부가 마스크 업계에 매점매석 금지와 가격인상 담합을 금지하는 대응책을 발표한 직후 일부 공공기관이 마스크를 대량 매입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전국민적 '마스크 구하기 전쟁'이 일어난 와중에 일부 기관은 많게는 10만개를 넘는 마스크 물량을 한 번에 구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태는 대구·경북지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상황에서도 계속됐다.
1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규환 미래통합당 의원실이 산업통상자원부 소관 공공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3월 현재까지 21개 공공기관이 구입한 마스크 개수는 총 38만7879개다.
이 가운데 강원랜드가 14만8945개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뒤를 한국남부발전(6만5029개), 한국산업단지공단(2만8600개), 한국가스기술공사(2만6129개), 한국전기안전공사(2만1681개)가 이었다.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1만3350개), 한국동서발전(1만2510개), 한국석유공사(1만2000개)도 1만개 이상의 마스크를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한국전력공사(6500개),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5900개), 한국무역보험공사(5000개), 한국산업기술진흥원(4450개), 한전원자력연료(4000개), 한국원자력환경공단(2900개), 대한석탄공사(2500개), 한국산업기술시험원(2160개), 한국로봇산업진흥원(1000개), 한국세라믹기술원(980개), 한국석유관리원(265개)의 순이다.
이러한 공공기관들의 마스크 매입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커진 2월 이후 집중됐다. 앞서 시장에서 마스크가 귀해지며 몸값이 치솟자 정부는 지난 1월 30일 매점매석 금지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 조치에도 공공기관들이 마스크를 계속 사들인 셈이다.
이 가운데 강원랜드의 마스크 구입 개수는 우체국을 통해 배포되는 공적 마스크 하루 공급량(14만개)과 비슷하다. 특히 강원랜드는 지난 2월3일에는 하루 새 10만8000개를 구입하기도 했다.
강원랜드 관계자는 "강원랜드는 다른 공공기관과 다르게 고객 밀집도가 높은 카지노, 호텔 등 다중이용시설을 운영하고 있다"며 "카지노의 경우 하루 약 8000명의 고객을 상대로 1500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어서 전염병에 매우 취약한 직원을 위해 마스크를 구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지노 직원을 통해 고객들에게 코로나19가 전염될 우려가 있어 마스크 대량 구매가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 관계자는 "강원랜드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전국적인 마스크 대란 속에서 강원랜드의 구매량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의원은 "강원랜드 전체 직원이 3000명 남짓한 것을 생각해보면 너무나 많은 마스크를 구입한 것 같다"고 했다.
강원랜드의 대량 매입은 정부가 '마스크 구매 5부제' 실시를 발표한 지난 5일 이후에도 계속됐다. 2월21일1000개, 2월28일 1만개를 구입한 데 이어 3월6일에도 2만9945개를 샀다.
지난 6일은 정부가 공적 판매처로 공급되는 마스크 비중을 50%에서 80%로 늘려 시행한 시점이기도 하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전날(9일) 마스크 수급 관련 브리핑에서 "시장 유통분이 20%로 줄어들다 보니 민간영역에서 마스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며 "자칫 협상력과 구매력이 있는 지자체, 기업 등만 마스크를 확보하게 되는 쏠림현상이 우려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 각 부처는 마스크 대량 구매에 나서지 않았다. 확진자가 급증한 대구·경북지역 국민은 물론 의료기관마저 마스크 부족 사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물량을 대거 쓸어갈 경우 수급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실제 김 의원실에 따르면 산업부는 지난 1년간 마스크 구입 내역이 없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공적역할 수행이 설립 목적인 공공기관이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성한 중앙대 사회과학대학 교수는 "정부에선 마스크 공급에 비상이 걸렸는데 공공기관이 먼저 나서서 마스크를 대량으로 챙긴 것은 윤리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마스크를 대구에 보내는 등 사회적 책무를 늦게라도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