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 심리학

      2020.03.23 16:59   수정 : 2020.03.23 16:59기사원문
코로나19가 지구촌 곳곳에 '불안 바이러스'도 함께 퍼뜨리는 모양이다. 19일(현지시간) 영국의 한 간호사가 '생활필수품 사재기'를 멈춰 달라고 호소한 영상이 500만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녀가 병원 중환자실에서 40시간 교대근무를 마친 직후 들른 슈퍼마켓엔 생필품이 동이 나 있었다.

식료품을 구하지 못해 망연자실하는 그녀의 표정이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린 셈이다.

사재기 열풍을 일으키는 일반적 동인이 뭘까. 사회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그 근원으로 본다.
즉 뭔가에 겁을 먹어 사재기(panic buying)를 한다는 것이다. '전염병의 심리학' 저자 스티븐 테일러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가 최근 CNN 인터뷰에서 "위험하다는 인식이 특별한 조치를 하게 만든다"고 한 그대로다. 특히 세계적 코로나19 확산은 초유의 사태로 그만큼 불확실성도 클 법하다. 그래서 식료품부터 두루마리 화장지까지 닥치는 대로 사들이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어느 사회에서든 사재기가 위험한 건 불문가지다. 경제를 교란해 궁극적으로 사회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을 더 불안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 미국에서도 사재기 광풍이 불자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릴 정도니….

문득 지난 1994년 국내에서 라면 등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생겼던 기억이 난다. 당시 1차 북핵위기 국면에서 열린 판문점 남북회담에서 북측 대표의 "서울 불바다" 위협으로 인해 만연한 불안감 탓이었다. 그러나 '코로나와의 전쟁'이 길어지고 있는 요즘 이렇다 할 사재기 현상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청와대 참모들에게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사재기 없는 나라, 이는 국민 덕분"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는 어찌 보면 북한 핵실험 등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 생긴 내성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해외 언론들이 우리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kby777@fnnews. 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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