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02
2020.03.25 17:24
수정 : 2020.03.26 09:11기사원문
【편집자주】만 18세의 생애 첫 투표, 그 시작을 파이낸셜뉴스가 응원합니다. 4.15 총선 페이지 오픈을 맞아 기획칼럼 '만 18세, 투표소 가는 길에'를 연재합니다. 진정한 민주시민의 권리인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 만 18세들에게도 축제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파이낸셜뉴스] 숲속 나라 동물들이 한자리에 모였어. 오늘은 숲속 나라의 왕을 뽑는 선거가 있는 날이거든.
"동물의 왕은 역시 사자여야 해. 그래야 폼 나지 않겠어?"
"나라를 다스릴 때는 힘보다 지혜! 지혜 하면 여우 아니겠어?"
사자와 여우가 각각 한마디씩 했지. 개미도 개미만한 목소리로 공약을 말했지만 잘 들리지는 않았어.
어쨌든 투표가 시작되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개표가 이루어졌지.
"사자 하나, 여우 하나, 여우 둘, 개미 하나, 개미 둘, 개미 셋, 개미 넷, 개미 다섯, 개미···. 개미···. 개미!"
사자와 여우가 털을 쥐어뜯으며 소리쳤어. "이건 무효야! 어떻게 개미 숫자를 이겨?!“
이는 '백점왕 만드는 절대 어휘'란 책에 나오는 우화입니다. 선거의 단면을 '동물의 왕' 투표를 통해 비춰주는 내용입니다. 다소 과장됐지만 '다수결의 원칙'이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이처럼 선거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표를 많이 얻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입니다. 물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원칙이 수반됩니다.
■환영! 18세 새내기의 첫 정치참여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반갑습니다. 올해 4.15 총선을 동행할 새내기 유권자(2001년 4월 17일~2002년 4월 16일생) 여러분!
필자는 올해로 30년 차 유권자입니다. 선배로서 유권자 대열에 합류한 새내기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사실 신입 유권자 환영식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글로 대신하겠습니다.
어떤 일이든 시작할 때 개념파악이 중요합니다. 새내기 유권자가 소중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려면 선거에 대한 정의부터 알아야 합니다. 그럼 선거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유권자가 투표를 통해 후보 중 1명을 대표로 선정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후보자란 선거에 나선 사람들을 합니다. 초중고에서 회장 선거를 많이 해봐서 알 겁니다. 그럼 유권자는 뭘까요? 선거에 참여해 투표를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만 18세가 되면 누구나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습니다. 유권자는 투표를 통해 후보자를 당선시킬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가 새내기 여러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국회의원 선거를 경험하는 우리나라 첫 18세로 역사에 기록되는 셈입니다.
■ '나 때'는 말이야
그렇다면 필자의 18세 시절은 어땠냐고요?
말 그대로 쌍팔년도 시절, 국내 상황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특히 1987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장기집권을 밀어붙이려 했던 시기였습니다. 이에 격분한 국민들은 대학생을 중심으로 6월 항쟁을 벌였습니다. 6월 항쟁이 한창일 때 시내 곳곳에서 날아드는 최루가스가 등하굣길을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다행히 그해 6.29선언이 발표되면서 대통령 직선제가 실현됐습니다. 그전까지는 대통령 간선제였습니다. 그 후 우리나라 대통령은 직선제를 통해 뽑고 있습니다. 그때 18세에 선거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습니다. 선거권이 없다 보니, 정치에 관심도 적었던 게 사실입니다.
당시 18세 청춘의 생활은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나오는 쌍문동 5인방과 99% 이상 일치합니다. 매일 학교에서 야간자습은 필수였고, 땡땡이를 위해 월담은 선택이었던 시절입니다. 그저 마이마이 카세트로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나 변진섭의 '새들처럼',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귀 기울이면서 입시지옥의 시름을 달랬습니다. 연습장 표지와 책받침에 어김없이 새겨진 홍콩 영화배우 장국영과 왕조현의 사진으로부터 무한 위로를 받던 시절입니다. 당시 최고의 인기 영화는 '영웅본색 시리즈'였습니다. 당시 우상인 주윤발을 따라서 롱코트에 성냥개비 하나 물어보지 않았다면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문학청년들은 시집 '홀로서기'(서정윤)와 '접시꽃 당신'(도종환)을 읊조리면서 눈물을 흘렸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잊지 못한 최고의 장면은 1988년 88서울올림픽 개막식입니다. 굴렁쇠 소년이 올림픽 스타디움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그룹 코리아나가 부르는 '손에 손잡고'에 따라 전 세계 선수들이 어깨동무하면서 춤을 추는 장면도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책가방은 무거웠지만 가슴속엔 꿈이 많던 18세 시절이었습니다.
■역사 속 18세 영웅은?
언뜻 기성세대가 보기에 18세 청춘은 철부지 고교생 정도로만 여겨집니다. 과연 그럴까요? 역사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18세의 나이에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위인들이 적지 않은 이유입니다. 18세 위인은 누가 있을까요? 그들은 그 나이에 무엇을 했을까요?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유관순 열사입니다. 그는 18세에 조국을 위해 3.1 독립 만세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광복된 조국에서 참정권을 행사하는 일상조차 누리지 못한 채 꽃다운 나이에 옥에서 생을 다했습니다.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끈 광개토대왕은 고작 18세에 고구려 19대 왕이 됐습니다. 18세에 왕이 된지 2년 만에 4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백제와 전쟁을 벌인 인물입니다. 그 후 그는 원대한 포부 아래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고구려의 왕이 됩니다.
프랑스의 영웅 잔 다르크도 18세에 영국과의 전쟁에 나가 나라를 구합니다. 하지만 잔 다르크는 모함을 받아서 적국인 영국에 넘겨져 '마녀' 선고를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잔 다르크의 사례를 보면 영웅이 마녀로 만드는 건 순식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과정엔 정치가 개입돼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18세 유권자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영웅을 마녀로 만들거나, 마녀를 영웅으로 만들 사람'을 국민의 대표로 뽑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수능과 다른 선거…"정답이 없네"
혹시 선거가 수능과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나요? 선거는 문제를 푸는 게 아닙니다. 객관식 시험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주관식이나 논술형 시험도 아닙니다. 정답이 없습니다. 그저 최선의 한명을 스스로 선택하는 의식이자 축제입니다. 어쩌면 시기적으로 18세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일은 잔인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코로나19의 공포 속에서 국가의 미래를 가늠하는 선거란 부담까지 떠안게 만든 셈이니까요. 그래도 18세 유권자의 한 표가 대한민국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선거를 진지하게 참여해주길 바랍니다. 어차피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렇다면 누굴 선택해야 할까요? 교과서적으로만 보면 선거는 '소신 있고, 능력 있고, 정직한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누구냐는 게 관건입니다. 차라리 최선을 찾기 어려울 때 최악을 피하는 전략도 필요합니다. 먼저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자는 피해야 합니다. 당장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포퓰리즘 공약을 내거는 후보는 의도와 실천 가능성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반칙하는 후보자도 선택해선 안 됩니다. 불법 선거운동을 하거나 경쟁자를 비방하는 후보자는 유권자에게도 반칙을 할 수 있습니다. 결과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후보는 올바른 정치를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언행이 바르지 않은 후보자도 뽑아선 안 됩니다. 막말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후보자는 행동도 바람직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명한 자의 입은 마음속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입 안에 있다'라는 옛말도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같은 '언행일치'도 중요합니다.
정책 능력이 부족한 후보자도 선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후보자가 훌륭해도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뿐 아니라 철새 정치인을 비롯해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 비리 전력이 있는 사람, 지역주의에 빠진 사람, 이념이 편향된 사람 등도 주의해야 할 후보입니다.
18세 새내기 여러분! 주사위는 던져졌고, 숫자만 선택하면 됩니다. 유관순 열사의 애국심, 잔 다르크의 용기,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마음속에 되새기면서 선거에서 임하길 바랍니다. 세상은 18세 유권자의 손에 의해 바뀔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가 훗날 뒤따른 후배 유권자들에게 앞서간 '발자국'이 됩니다. 현명한 선택을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백범 김구 선생이 남긴 명언을 소개하면서 맺겠습니다. "눈길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걷지 말기를.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이 훗날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양형욱 정보미디어부 부장 hwyang@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