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간 찡그리지 마라"…간부 단속하는 北의 의도
2020.04.09 13:00
수정 : 2020.04.09 13:18기사원문
[편집자주]2018년부터 북한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동북아시아 정세는 급변했다. '평양 인사이트(insight)'는 따라가기조차 쉽지 않은 빠른 변화의 흐름을 진단하고 '생각할 거리'를 제안한다.
(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아침 출근 후 노동신문을 펼쳐들 북한의 각 단위별 일꾼(간부)들은 요즘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고 있을 것 같다.
9일 자 노동신문은 '도덕은 일꾼의 가치와 품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징표'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일지 짐작은 가지만, 실제 보도 내용은 예상보다 더 구체적으로 간부들의 태도를 지적하고 있었다.
신문은 "늘 미간을 찡그리고 큰소리나 거친 행동으로 사람들을 대한다면 그런 일꾼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거나 "일꾼들은 말을 겸손하고 예절 있게, 문화적으로 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신문은 이 같은 태도가 필요한 총괄적 이유로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그 자체가 군중과 인간적으로 친숙해질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명제를 내세웠다.
쉽게 말하면 간부들의 태도가 다소 고압적이고 다가가기 어려워 주민(인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현상을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갑질'이라고 표현되는 행동들도 일부 나타났을 수 있다.
신문은 다른 기사를 통해서도 "언어 예절을 잘 지켜야 일꾼의 사업 권위가 올라간다"거나 "일꾼의 이상의 높이만큼 전변(큰 변화)이 온다"라고 간부들의 태도 변화를 다그쳤다.
올 들어 이 같은 노동신문의 보도를 보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북한이 정면 돌파전의 이행을 위해 필요한 주요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이 간부들의 태도 및 인식 변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노동신문은 공식적으로 노동당의 기관지이기 때문에, 신문을 통해 나오는 여러 가지 '주문'들에 실린 권위는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보자"라는 식의 캠페인이라기보다는 "만일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이라는 경고의 의미가 더 짙다.
실제 지난 2월에는 고위급 간부들에 대한 '해임' 조치가 노동신문을 통해 공표되기도 했다. 당시 신문은 리만건, 박태덕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해임했다고 밝히면서 "일부 간부들 속에서 극도로 관료화된 현상과 행세식 행동들이 발로되도 당 간부 양성 기지에서 엄중한 부정부패현상이 발생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북한이 간부들의 해임 사실과 관련 이유를 조목조목 공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내부적으로 간부들에 대한 단속의 강도가 '최고조'에 올라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동향이 북한이 내부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임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례적으로 간부들에 대한 인사 조치를 구체적으로 공개했다는 점은 대내외적으로 현재의 기조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정면 돌파전을 1990년대의 '고난의 행군' 시기와 비슷한 기조로 이행하고 있다. 대북 제재를 '압살 책동'으로 표현하고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면서 자력갱생의 기조로 이를 이겨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기조에서 내부적으로 '정신 무장'을 강조하는 것은 일면 당연한 측면이 있다.
특히 북한은 지난 2016년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 전략목표 수행의 마지막 해인 올해의 성과를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성공에 따른 경제난 해소와 연관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 관광을 염두에 둔 대대적인 공사, 건설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 온 것도 경제난 해소, 특히 대북 제재 해결을 염두에 둔 조치로 해석된다.
이러한 기조를 보며 경제난 해소에 대한 기대감이 컸을 상황에서 돌연 맞이하게 된 험난한 국면은 간부들과 주민들의 삶에 일종의 반작용적 충격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침체는 북한의 '계획'에 추가적이고 불가피한 변화를 줘야 하는 요인이 됐다.
북한이 강력한 단속 기조를 가동한 것은 이 같은 충격과 침체를 최대한 빠르게 다스리고 전환하기 위해서라고도 볼 수 있다.
인민은 '위하고' 간부는 단속하는 것은 나름의 밸런스를 조절하기 위한 통치 전략으로 보인다. 최고지도자와 인민 사이에 간부라는 '범퍼'를 놓는 셈이다.
다만 통제와 단속도 어떤 결과물이 없이 국면만 길어지면 결국 느슨함이 생기기 마련이다. 적절한 시기에 출구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봄철을 맞아 구체적으로 정면 돌파전의 실질적 이행에 들어간 것은 최근의 변화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추가적 조치들은 당장 내일(10일)로 예정된 최고인민회의에서 세부적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