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불륜드라마는 실패하지 않는다?

      2020.04.13 14:37   수정 : 2020.04.13 14:40기사원문
노래 ‘도로남’의 가사처럼 한때 ‘님’이였던 남녀가 ‘남’이 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했다. 두 부부의 밑바닥을 드러낸 불륜극을 심리스릴러로 풀어낸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화제다. 6%대에서 출발한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지난 11일 방송분(6회)에서 무려 21%를 돌파했다.

JTBC 드라마 중 ‘SKY 캐슬’의 시청률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여주인공 지선우(김희애)의 대사에 발끈한 남성 시청자가 온라인에 게시글을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가 하면, 이혼 전문 변호사들이 지선우의 행동을 예로 들며 이혼소송에 무엇이 유리하고 불리한지 조언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웰메이드’ 불륜 드라마는 실패하지 않는다?
불륜은 국내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배우 장서희를 한류 스타로 만든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2007)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더 유명해진 JTBC 월화드라마 ‘밀회’(2014)까지 아침, 저녁, 주말 드라마를 가리지 않는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VIP’도 백화점 상위 1% 고객을 관리하는 직장 이야기에 남편의 불륜녀가 누구인지 맞추는 추리식 전개로 눈길을 끌었다.
‘부부의 세계’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 지선우로 활약 중인 김희애의 출연작만 봐도 ‘내 남자의 여자’(2007), ‘아내의 자격’(2012), ‘밀회’ 등이 있다.

‘부부의 세계’는 영국의 BBC 화제작 ‘닥터 포스터’가 원작이다.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다. 정덕현 방송칼럼니스트는 “불륜 소재라고 다 막장은 아니다”라며 “불륜은 고전문학에서부터 꾸준히 다뤄온 소재로 이 스테디셀러를 통해 얼마나 색다른 메시지를 던지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불륜을 소재로 완성도 있게 인간과 사회탐구를 한다면 높은 시청률과 작품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부부의 세계’ 속 불륜극의 양상이 부부 간의 대결 구도, 난타전처럼 구성돼 있는데, 이걸 아주 치밀하고 섬세한 심리극처럼 풀어낸 점”을 인기 요인으로 꼽았다. 정석희 칼럼니스트는 드라마 자체는 “비현실적이고 비도덕적인 인물들 때문에 불편하다”면서도 “고급스럽게 포장된 두 부부의 대립, 여주인공의 의상이나 인테리어 등 볼거리가 많은 게 인기 요인”이라고 봤다.

■남성의 정신적, 물리적 폭력에 맞서는 ‘독한 여자’
‘부부의 세계’의 모완일 PD는 앞서 “원작 여주인공의 예상을 뛰어넘는 행동에 매료됐다”고 밝혔다. 실제 그가 연출한 ‘부부의 세계’ 속에서 남편의 불륜에 대처하는 지선우의 행동은 과거 한국 여성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지선우는 ‘독한 여자’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가부장제에 정면 도전한다. “며느리의 완벽한 성격이 불륜의 빌미를 제공했으니 남편의 불륜을 용서하고 받아주라”는 병상의 시어머니에게 지선우는 “죽지 말고 아들이 어떻게 망하는지 똑똑히 지켜보라”면서 과거의 관습을 따르지 않을 것임을 다짐했다. 남편의 ‘바람둥이 회계사’ 친구의 유혹을 받아들인 도발적 행동도 단순히 복수용 ‘맞바람’과 결이 다르다. 지선우는 이웃의 위기를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그를 역이용해 이혼소송에 필요한 정보를 빼낸다. “여자도 욕망이 있으나 부부로서 신의를 지키기 위해 바람을 피지 않는다”며 따끔한 일침도 가한다. 평소 알고 지내던 내연녀의 부모 집에 남편과 함께 찾아가 모든 사실을 폭로하는 장면도 파격적이다. 6회에서는 남편의 불륜에 그의 자식을 죽인 메데이아의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섬뜩한 장면도 연출된다. 부모의 폭력 현장을 자식에게 직접 보여준다는 점이 못내 불편하지만, 동시에 이 장면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이 이룬 것을 지키려면 목숨까지 걸고 맞서야 함을 드러낸다.

지선우의 환자이자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민현서(심은우)와 지선우 간의 연대도 흥미롭다. 두 사람은 직업과 나이는 다르지만, 극중 남성들의 정신적, 물리적 폭력에 맞선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는 “원작도 그렇지만 여성들이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며 “남성 중심 사회에 맞서는 지선우와 민현서의 연대, 가족주의의 붕괴, 폭로되는 부유층의 허위 등이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평했다.

■“자극을 넘어 사회 들여다보는 의미망 만드는 게 관건”
창작진에 대한 신뢰도 한몫한다. '부부의 세계'는 인물의 내면을 세밀하게 짚는데 일가견이 있는 주현 작가가 극본을 쓰고, 강은경 작가(‘제빵왕 김탁구’, ‘낭만닥터 김사부’)가 만든 창작집단 글Line이 ‘크리에이터’로 함께한다. 증권사에서 근무한 독특한 이력의 주 작가는 ‘을들의 반란’을 소재로 파란만장한 직장생활을 그린JTBC 금토드라마 ‘욱씨남정기’를 썼다. 모완일 PD는 김남주의 부활을 알린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2018)를 통해 사회문제를 현실적으로 그린 미스터리 멜로를 선보인 바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는 “두 작가의 전작들을 볼 때, 매회 충격적 전개와 대결 구도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며 “자극적 드라마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는 의미망을 만드는 게 관건이다. 맞바람 장면에서 김희애가 주도권을 쥐는 등 권력 관계가 뒤바뀌는 장면이 계속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부부의 세계’는 부부가 파탄에 이르며 끝난 원작의 시즌1과 자식 간의 관계를 다룬 시즌2를 합해 16부작 드라마로 제작된다. 6회에서 이미 시즌1의 결말에 이른 ‘부부의 세계’는 내연녀와 결혼해 고향에 다시 돌아온 지선우의 전남편이 복수를 예고하면서 두 부부의 끝나지 않은 전쟁을 예고했다.
“이혼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이라는데, 이혼 후에도 그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 지선우의 앞날이 우려되면서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주현 작가는 앞서 “지선우의 감정선을 쫓아가면서 주변인물들과의 감정적 부딪힘, 엇갈림 사이를 따라가는 드라마”라며 “지선우가 가지고 있는 파격과 압도적인 힘이 이 드라마의 차별점”이라고 밝혔다.
배우 김희애도 “이토록 독하고 강하며, 인간의 밑바닥 내면까지 보여주는 드라마가 있었을까”라며 “양파 껍질을 벗겨내듯 무궁무진하고 끝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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