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특급 맞아 솔로포 뽑아낸 립켄…'철인'다운 은퇴전

      2020.04.15 18:08   수정 : 2020.04.15 18:08기사원문
올스타전은 이름만큼 볼 게 없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듯. 하지만 세월이 쌓이다보면 명장면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90년 가까운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제1회 1933년)이 그랬다.



'폭스 스포츠'는 수 년 전 가장 극적인 올스타전 명장면 10선을 발표했다. 1934년 투수 칼 허벨이 베이브 루스, 루 게릭 등 전설적 타자들을 잇달아 삼진으로 돌려 세운 장면, 1941년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월리엄스의 결승 홈런 등등.

그 가운데 6위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2001년 7월 11일 시애틀에서 벌어진 제72회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이날 박찬호(당시 LA 다저스)가 내셔널리그 투수로 출전했다. 한국인 첫 올스타 탄생이었다. 이후 김병현, 추신수, 류현진이 뒤를 이었다. 마운드에 선 박찬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다.

이 올스타전은 특별했다. 우리에겐 박찬호가 출전해서 그랬고, 미국인들에겐 칼 립켄 주니어(볼티모어 오리올스) 때문에 특별했다. 립켄 주니어는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였다.

그는 21년을 오로지 한 팀에서 뛰었다. 루 게릭이 보유한 최다 연속 경기기록(2130)을 깨고 새로운 이정표(2632)를 남겼다. 미국인들은 그를 '아이언 맨(Iron Man)'이라 부른다. 그는 뛰어난 야구 선수였지만 자질보다 그를 더 돋보이게 한 것은 성실함이었다.

그는 1983년 처음 올스타에 뽑힌 후 내리 19년 연속 그 자리에 올랐다. 미리 은퇴를 발표한 마지막 올스타전에도 당당히 팬 투표에 의해 선출됐다. 그는 3루수로 시작해 오랜동안 유격수를 거친 후 3루수로 은퇴했다.

아메리칸리그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경기 시작과 함께 립켄 주니어에게 수비 위치 교환을 제안했다. 선배에 대한 무한 존경의 표시였다. 그는 21년의 선수 생활 가운데 15년을 유격수로 뛰었다. 첫 해와 마지막 5년만 3루수로 활약.

3회 말 립켄 주니어가 타석에 들어서자 4만 관중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야구선수의 마지막을 도저히 앉아서 맞이할 수 없었다. 마운드에는 박찬호가 서 있었다. 내셔널리그 선발 랜디 존슨(당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이어 등판했다.

첫 올스타전에 출전한 투수와 19번째이자 마지막 올스타전에 출전한 타자의 대결. 목 안에서 꿀꺽하는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숱한 야구경기를 지켜보았지만 이처럼 긴장되긴 처음이었다. 흥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초구에 결판났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몸쪽 직구를 던졌다. 그 때만해도 메이저리그서 알아주던 박찬호의 강속구였다. 나이든 타자는 아무래도 빠른 공에 약하다. 배트 스피드가 그만큼 느려져서다.

박찬호는 2001년 상반기 8승5패, 평균자책점 2.80을 기록했다.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정상급 성적이다. 립켄 주니어는 2001년 홈런 16개, 타율 2할7푼6리를 남겼다. 립켄 주니어의 배트가 힘차게 돌아갔다. 타구는 쭉쭉 뻗더니 왼쪽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멋진 은퇴 선물이었다. 박찬호는 이어 이치로 스즈키(당시 시애틀)를 2루 땅볼,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립켄 주니어는 생애 두 번째 올스타 MVP에 선출됐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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