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사고 속출에도 보건당국 '나몰라라'
2020.04.18 16:00
수정 : 2020.04.18 18:23기사원문
#. 17일 이른 아침 경기도 평택호 인근 차량에서 젊은 남녀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30세 여성 남자친구의 신고로 이들의 위치를 추적한 경찰은 이들이 ‘성형 부작용’으로 고민하다 극단적 선택에 이른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신고한 남성은 “(여자친구가) 성형수술이 잘못돼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너무 힘들다는 전화가 걸려왔다”고 말했다. 함께 사망한 21세 남성 역시 성형 이후 수술이 잘못됐다고 주장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강남 일대 성형외과에서 수술 중 사망하는 등 의료사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보건당국이 이를 관리하지 않고 있다. 2013년 그랜드성형외과 여고생 사망, 2016년 ‘권대희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이 거듭 터지고 있지만 실태조차 파악하는 곳이 없다.
■거듭된 사고에도 복지부는 ‘복지부동’
올해 초에도 홍콩 재벌 손녀가 한국을 찾아 지방흡입과 유방확대 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져 숨졌다. 피해자는 한국인 브로커의 소개로 문제 병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9년 브로커를 통한 외국인 환자 유치를 전격 허용했다. 합법 브로커에 더해 등록되지 않은 불법알선까지 겹치며 성형외과의 기업화가 본격화된 실정이다.
사망사건 뿐 아니라 수술실패 등을 비관해 우울증을 앓는 사례도 적지 않다. 17일엔 20~30대 남녀 3명이 평택호 인근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이중 사망한 30대 여성의 남자친구는 여자친구가 성형수술 실패 후 우울증을 앓았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함께 사망한 20대 사망자 역시 수술이 잘못돼 비관해왔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평소 성형수술이 잘못돼 비관하던 이 사람이 가족과 통화에서 부검으로 잘못된 원인을 찾아달라고 요구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속출하는 성형사고에도 이를 관리해야 할 보건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 의료사고 통계는 물론, 사망자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경찰 역시 신고가 된 사안만을 집계하고 있어 정확한 피해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의료사고 이후 병원 측과 합의하는 경우가 많고 문제를 발설할 경우 큰 위약금까지 물도록 하고 있어 사고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기자와 경찰이 나서 의료사고 피해자와 어렵게 접촉해도 증언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권력을 가진 보건 당국이 나서 실태를 파악해야 하는 이유다.
■사망사고 집계기관 ‘한 곳도 없어’
18일 보건당국 및 수사당국에 따르면 성형수술로 사망한 사례 및 피해 사례를 집계 또는 파악하고 있는 기관은 전무하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조차 이에 대한 통계가 없다. 의료기관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관계자에게 이 사실을 문의하자 “우리 부서에선 따로 사망자를 집계하지 않는다”라며 “통계를 담당하는 곳에 문의하라”란 답이 돌아왔다.
이에 보건복지부가 집계하는 각종 통계를 입수해 뒤졌으나 정확한 사망실태를 유추할 수 있는 자료는 전무했다. 부처 차원에서 성형외과와 피부과 등이 브로커를 통해 영업할 수 있도록 허용한 상황에서 속출하는 사망자와 사고사례를 파악조차 않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문제는 성형외과에서 사망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굵직한 사건 외에도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사건이 적지 않다.
일선 경찰 관계자는 “분명히 일어나긴 하는데 우리한테 오는 건 신고가 접수된 경우라서 (파악이) 쉽지가 않다”며 “계속 여기저기 문의해서 종결된 사건이나 신고를 안 한 경우까지 파악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언론이 주목한 사례만 하더라도 여러 건이다. 2019년 한 성형외과에서 대학생이 안면윤곽술을 받다 뇌손상을 입은 사례가 있었다. 이 병원은 2018년에도 대학생이 코수술을 받다 뇌사상태에 빠진 바 있었다. 문제 병원은 2018년 사고 이후 수술실CCTV를 없애 논란이 일었다.
수술실CCTV 설치는 병원의 선택사항으로, 이를 강제하는 법안(일명 권대희법)이 발의됐으나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지난달 권대희 사건 유족이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냈지만 1만5000여명을 모으는데 그쳤다.
■피해자는 ‘나홀로 싸움’ 이어가
2016년 3월엔 역삼동 한 성형외과에서 양악수술을 받던 대학생이 숨졌고, 강남 다른 성형외과에서 코수술과 지방흡입을 받던 태국인이 숨져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대부분은 언론보도가 이뤄지지 않지만 외국인 사망사건으로 경찰이 조사에 나서며 비슷한 시기 사망한 다른 사건도 함께 주목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보건복지부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후 비슷한 사건이 거듭 발생하고 있지만 여전히 복지부동이다.
정부와 국회, 검찰까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속수무책이다. 성형사고가 대부분 공론화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홀로 오랜 싸움을 이어갈 여력이 없어 병원 측이 제시하는 수억원의 합의금에 도장을 찍고 마는 것이다.
그나마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아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수술실CCTV 영상을 500여 차례나 돌려보며 4년 간 싸움을 이어온 덕에 성형사망 실태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일각에선 권대희 사건이 성형수술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마지막 사건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 사건이 유명해진 뒤 병원이 수술실CCTV 원본을 피해 유가족에게 공개하지 않는 일이 잦아질 거란 뜻이다.
심지어는 수술실CCTV란 명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검찰이 핵심혐의를 불기소해 병원 측의 피해가 크지 않을 거란 얘기도 나온다. 2020년 4월 권대희 사건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본지 2월 1일. ‘[단독] 검찰, '권대희 사건' 전문감정과 정반대 결론... '봐주기 수사' 의혹’ 참조>
■파이낸셜뉴스는 일상생활에서 겪은 불합리한 관행이나 잘못된 문화·제도 등의 사례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해당 기자의 e메일로 받고 있습니다. 제보된 내용에 대해서는 실태와 문제점, 해법 등 충실한 취재를 거쳐 보도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제보와 격려를 바랍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