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브 루스 2도류가 된 사연
2020.04.20 13:59
수정 : 2020.04.20 13:59기사원문
한 세기 전 인류는 바이러스의 침공을 경험했다.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18년. 치명적 바이러스가 인류를 덮쳤다. 아직 세계보건기구(WHO)가 청설되기 전. 당시 세계인구의 ⅓인 5억 명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지금이라면 당연히 팬데믹(pandemic·감염병 최고 위험 등급)이 선언되었을 것이다. 이 병으로 인해 1700만에서 1억 명의 인류가 사망했다. 1차 대전 전사자 수(1000만 명)보다 월등 많았다.
연합국은 국민의 사기 진작을 위해 사망자 수를 감추었다. 하지만 중립국이던 스페인은 자유롭게 이를 보도했다. 그 바람에 스페인이 특히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 이 감염병에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그 해 메이저리그는 1차 대전 종군과 ‘스페인 독감’ 감염으로 인해 심각한 선수 부족을 겪었다. 이 바람에 베이브 루스(당시 23세) 같이 투수는 물론 타자에도 능한 선수에겐 투·타 겸업의 길이 열렸다.
베이브 루스는 1917년 투수로 활약하며 24승 13패 평균자책점 2.01을 기록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에이스였다. 타자로도 52경기에 나서 홈런 두 개를 때려냈다. 그 두 개의 홈런뿐 아니라 베이스 루스의 타구는 엄청난 비거리로 주목을 받았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미국을 덮치자 루스는 본격적으로 ‘2도류’에 도전했다. 타자로 95경기에 출전해 11개의 홈런을 터트렸다. 홈런 공동 1위. 투수로는 13승 7패 평균자책점 2.22를 남겼다. 루스의 ‘2도류’는 이듬해까지 이어졌다. 1차 대전은 종전되었지만 팬데믹은 1920년 말까지 지속됐다.
루스는 1919년 130경기서 29개의 홈런을 때려 단독 1위에 올랐다. 투수로는 9승 5패 평균자책점 2.97. 루스의 외도는 2년 반짝 한 후 사실상 중단됐다. 1919년 말 루스는 12만 5000달러에 뉴욕 양키스로 이적됐다. 당시 양 팀이 주고받은 계약서는 나중에 경매를 통해 99만 6000달러(약 12억 원)에 팔렸다.
양키스는 루스의 상품성을 알아보았다. 투수를 포기(몇 경기 더 나오긴 했지만)하고 타자에 전념시켰다. 루스는 이적 첫 해 54개의 홈런을 폭발시켰다. 루스의 홈런은 ‘블랙삭스 스캔들(1919년 월드시리즈서 도박사와 선수가 짜고 승부를 조작한 사건)’로 추락 위기를 겪던 야구의 인기를 되찾아 주었다.
루스는 통산 714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2213개의 타점을 뽑아냈고 2062개의 볼넷을 얻어냈다. 모두 은퇴할 당시 최고 기록이었다. 루스가 세운 장타율(0.690)과 OPS(1.164)는 아직까지 어떤 타자도 깨트리지 못했다.
21세기에도 백 년 전 루스와 마찬가지로 ‘2도류’에 도전하는 선수가 있다. 메이저리그서 활약하고 있는 일본인 타자 오타니 쇼헤이(26·LA 에인절스)다. 오타니는 2018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22개 홈런과 4승 2패 평균자책점 3.31을 기록해 화제를 모았다.
팔꿈치 수술로 지난 시즌 타자로만 뛰어 18개 홈런을 기록했다. 정상적으로 시즌이 진행되었더라면 5월부터 마운드에 올라 ‘2도류’를 재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 스포츠를 ‘동작 그만’ 상태로 만든 코로나 19로 인해 ‘2도류’ 시즌 2를 열지 못하고 있다. 20일 현재 오타니는 두 차례 불펜 투구를 소화했다. 루스는 팬데믹 이후 단칼로 세계를 제패했다. 쌍칼의 오타니는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하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