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던 손, 크레파스로 유년시절을 그리다

      2020.04.20 17:28   수정 : 2020.04.20 17:31기사원문
그의 그림에는 푸르른 신록이 가득하다. 산맥의 능선인가 알 수 없는 경계 위 아래로 초록빛이 넘실댄다. 오일파스텔과 크레용으로 그려낸 그의 세상은 이렇게 푸르고 밝다.

새와 나무와 마을이 정겹게 어우러지는 산의 모습이 있고, 어렸을 적 설화에 나왔을 법한 불개도 살아 숨쉰다. 푸른 들판을 향해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오누이가 있다.

동화 같은 그림을 그린 이는 60대 중반의 시인 최서림(64·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이다. 1993년 '현대시'로 등단해 '이서국으로 들어가다', '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세상의 가시를 더하다' 등 꾸준히 시집을 발표하며 동천문학상 등을 수상한 문인이다. 25년 넘는 문학인의 삶 속에서 그는 때로 고달픔이 있었는지 2010년대 중반 마음의 상처가 깊어졌다.
2017년 치유를 위해 시작한 미술 심리 치료가 그에게 힘을 주었고 재미를 주었다. 낙서 수준으로 시작됐던 그림은 자못 그림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이후로 꾸준히 그린 그림이 총 49점, 이 가운데는 문인으로서 시화일치(詩畵一致)를 지향하는 시화 13점도 포함돼 있다. 자신의 시를 비롯해 김소월, 플로베르, 도스토옙스키 등 유명한 문인들의 시에서 모티브를 찾아 그렸다.
최서림 작가는 "전시 제목 '시를 그리다'에서 보듯이 내 그림은 현대판 문인화"라며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는게 내 작업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시를 그림으로 재창조한 그의 작품들이 대개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느껴지는 반추상화가 많은 이유다.
그는 "크레파스를 잡는 순간 1960년대 고향 청도에서의 유년시절을 동경하는 낭만적 정서와 함께 동심으로 돌아간다"며 "모두 다 크레용과 오일파스텔로 그렸는데 유화보다 부담이 없어 좋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29일부터 5월 5일까지 서울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