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백남기 농민 향한 살수행위는 위헌”
2020.04.23 14:54
수정 : 2020.04.23 15:1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고(故) 백남기씨 사망을 불러온 경찰의 직사살수행위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23일 백씨의 유족들이 서울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직사살수와 그 근거 규정이 위헌이라며 청구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8대(합헌) 1(위헌)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유족들이 위헌 확인을 구한 조항은 경찰관직무집행법 10조4항 및 6항, 살수차 운용지침 중 직사살수 관련 부분 등이다.
경찰관직무집행법 10조4항은 '위해성 경찰장비는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같은 법 6항은 '위해성 경찰장비의 종류 및 그 사용기준, 안전교육·안전검사의 기준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한다.
백씨는 지난 2015년 11월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의식불명이 됐다.
이에 백씨의 가족들은 "살수차 사용요건과 기준이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추상적으로만 규정된 상태에서 대통령령에 위임되고, 다시 여러 하위위임 법령을 거쳐 살수차 운용지침에서야 사용기준을 정하는 등 명확성 원칙에 위반된다"며 "이러한 불명확한 지침에 따라 살수행위를 해 백씨의 생명권과 신체를 보전할 권리, 집회의 자유 등을 과도하게 침해했다"며 같은 해 12월 헌법소원을 냈다. 두개골 골절은 입은 백씨는 2016년 9월25일 숨졌다.
헌재는 “경찰이 살수차를 이용해 물줄기가 일직선 형태로 백씨에게 도달되도록 살수한 행위는 백씨의 생명권 및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직사살수는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히 초래됐고, 다른 방법으로는 그 위험을 제거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 이뤄져야 한다“며 ”부득이 직사살수를 하는 경우에도 구체적인 현장 상황을 면밀히 살펴봐 거리, 수압 및 물줄기의 방향 등을 필요한 최소한 범위 내로 조절해야 한다“고 직사살수행위가 헌법에 합치되기 위한 요건을 제시했다.
한편 경찰은 백씨 사망 이후 집회 현장에 살수차 배치를 하지 않고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지난해 7월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보고회'에서 집회나 시위 현장에 살수차 배치 및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월에는 관련 시행령을 개정해 살수차 사용 요건을 '살수차 외의 경찰장비로는 그 위험을 제거·완화시키는 것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로 제한했다. 이는 사실상의 사용 금지 권고라는 분석이다. 경찰 관계자는 "심판 청구 대상 중 하나인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 시행령' 13조 1항은 이미 개정됐다"면서 "원칙적인 살수차 미배치 방침을 계속 이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이병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