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몰카 공중보건의, 엽기발언 아산병원 인턴... 의사자격 유지될까
2020.04.25 17:51
수정 : 2020.04.26 09:37기사원문
■속출하는 의료계 성범죄... 언제까지?
25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애인 동의 없이 성관계 영상을 찍어 보관하던 공중보건의 A씨가 23일 오전 7시 거주하던 오피스텔에서 현행법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A씨가 성관계 영상 등을 보관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입건해 조사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피해여성이 112를 통해 ‘A씨가 자신과의 성관계 영상을 촬영한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사건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은 A씨가 코로나19 지원을 위해 대구에 파견되는 등 현직 공중보건의 신분이란 점에서 더욱 화제가 됐다.
지난달엔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인턴으로 근무하며 엽기적 성추행과 성희롱을 일삼은 혐의를 받는 B씨에 대해 병원이 정직3개월 솜방망이 처분을 했다 논란이 되기도 했다. B씨는 수술을 받기 위해 마취 상태에서 대기 중이던 여성 환자의 음부를 반복적으로 만지는 등의 혐의를 받았다.
병원 징계위원회 보고서엔 “처녀막도 볼 수 있나요”, “(절제한) 자궁을 먹어봐도 되나요”, “저는 00를 좀 더 만지고 싶어 여기 서 있겠습니다” 등의 문제적 발언도 여러 건 들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의 3개월 정직 처분에 B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징계취소 신청까지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은 사태가 커진 뒤에야 지난 7일 문제 인턴의 수련을 취소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유력 병원의 일처리치고는 터무니없는 봐주기란 비판을 받은 이후였다.
■1년 성범죄 163건... 도덕적 해이 도 넘어
의사들의 도덕적 해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검찰청 직업별 범죄통계로도 이러한 사실이 명확히 확인된다. 2018년 한 해 동안 성범죄로 입건된 의사 수는 무려 163명에 이른다. 주요 전문직군 가운데 독보적 1위다. 위에 언급된 사례를 그저 문제적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도덕적 해이 이면엔 안이한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의 자격에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는 현행 의료법의 맹점이 의료계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현행 의료법은 제8조 제4호에서 의료인의 결격사유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요약하면 ‘허위로 진료비를 청구하여 환자나 진료비를 지급하는 기관이나 단체를 속인 경우’, 그밖에 의료법 및 보건관련 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경우다.
형법 상 횡령, 배임, 절도, 마약흡입, 업무상과실치사상, 강도, 강간은 물론이고 살인을 저지른다 해도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없다. 지난 2000년 1월, 김찬우 당시 보건복지위원장(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며 의료인의 면허규제 조항이 대폭 완화된 이후 벌어진 일이다.
기존 의료법은 의료인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으나 개정된 현행 의료법은 의료법 또는 보건의료와 관련되는 법령을 위반한 경우에만 면허취소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르면 위 A, B씨의 의사면허 역시 규제할 방도가 없다. 이들이 전공의 자격을 취득해 개인병원을 열어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이들에게 진료받는 환자가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없음은 물론이다.
실제 사례도 적지 않다. 2007년 경남 통영에서 근무하던 의사 황모씨는 수면내시경을 받으러 온 여성 환자들을 상습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황씨는 출소 후 경남 다른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의사면허가 유지된 탓이다. 오늘도 황씨에게 진료 받고 있을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런 사례가 황씨 만일까.
■'권대희 사건' 등 의료사고에도 영향
현행 의료법의 치명적 문제는 의료사고 피해자의 억울함까지 증폭시킨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권대희 사건’이 대표적이다. 경희대에 재학 중이던 2016년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세상을 떠난 권씨 사건은 현재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당시 집도의는 권씨의 뼈만 절개한 뒤 다른 수술실로 이동했고,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신입의사가 이를 이어받아 수술하다 역시 다른 수술실로 나갔다. 당시 이 병원에선 권씨 포함 3개의 수술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권씨는 무려 3500ml의 피를 흘려 과다출혈로 중태에 빠졌다. 간호조무사가 의사 없는 수술실에서 혼자 지혈한 시간만 35분여에 달했다.
하지만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이를 의료법 상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로 기소하지 않았다. 유족은 낙담했다. 의료법 상 무면허 의료행위가 인정돼야 의사 자격 제재 및 병원 영업정지 등의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술했듯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가 인정돼도 관계자는 자격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권씨 사건과 같이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의료행위를 하더라도 사기나 상해 등의 혐의를 적용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 한국 법체계에서 의사 면허 규제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유족을 좌절시키는 요소다.
심지어 권씨 집도의 장모씨와 신입의사 신모씨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조차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부 의사들의 행태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의료법 개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2000년부터 현재까지 의사 면허를 보다 강하게 규제하자는 취지의 의료법 개정안이 20건 이상 발의됐으나 이 가운데 국회 문턱을 넘은 게 단 한 건도 없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전 국민적 기대와 책임을 안고 출범하는 21대 국회에서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