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서 만진 생선만 2톤 "엄마 직업이 뭐야?"
2020.05.10 07:30
수정 : 2020.05.10 13:12기사원문
(서울=뉴스1) 김종윤 기자 = "엄마는 회사에서 무슨 일 하는 거야?"
윤소영 CJ제일제당 식품개발센터 수산식품팀 연구원은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아이들에게 핀잔을 들어야 했다. 한창 비비고 생선구이를 개발하던 시기, 온몸에서 진동하는 생선 비린내가 이유였다. 하루에도 수십마리 생선을 직접 만지며 모든 신경을 쏟아부은 탓에 자신의 몸에서 나는 비린내를 느낄 여유가 없었다.
"비비고 생선구이 비린내는 잡았지만 개발 기간 내내 제 몸에선 비린내가 났습니다. 굽는 과정을 테스트하는 날이면 탄 냄새가 온 몸에 밴 채로 집에 돌아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면 아이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회사생활을 궁금해 했죠."
◇ 냄새·연기 불편했던 생선구이 "돈 주고 사먹을 가치 확보"
국민 생선으로 불리는 고등어는 비린내가 유독 심하다. 집에서 굽기라도 하면 연기와 냄새 때문에 주부 9단도 쉽지 않은 요리다. 먹고는 싶지만 조리가 어려운 생선구이. 비비고 생선구이는 '불편함을 해결하고 맛있는 생선 HMR(가정간편식)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CJ제일제당은 2018년 TF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다. 윤 연구원은 "비비고 생선구이를 사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제품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도 주부지만, 집에서 생선구이를 하기가 꺼려지기 때문에 도전할 가치가 있었습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대한민국 식품기업 1위 CJ제일제당도 생선구이 HMR 개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아무도 도전하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기에 어쩌면 당연했다. 그는 "개발 과정에서 설비를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며 "연구원과 다룬 샘플 생선만 2톤이 넘는다"고 말했다.
◇ 최고의 맛은 신선한 생선에서 출발
윤 연구원은 맛있는 생선구이 시작은 신선한 원료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가 시장에서 생선을 살 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 역시 '싱싱함'이다. 주부9단들이 생선을 고를 때 선도를 최우선으로 따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발 초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부분도 선도가 좋은 원료를 찾는 작업이었다.
수산식품팀은 최고의 원재료 공수를 위해 국내는 물론 해외 출장을 마다하지 않았다. 생선 어획부터 유통까지 모든 구조를 파악했다. 지속해서 신선하고 우수한 원물을 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찾아낸 신선한 원재료를 공수했다. 문제는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비린내였다. CJ제일제당은 이마저도 자체 기술을 통해 소비자가 느낄 수 없도록 했다. 고등어엔 사과 추출물을 적용했고 삼치·가자미는 복합조미소재와 밀가루로 비린내를 잡는 동시에 풍미를 강화했다.
윤 연구원은 "선도가 떨어지는 수산물을 사용하면 품질 구현이 어렵다"며 "구매팀과 많이 고민했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선도가 좋은 원료 구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 노릇노릇한 껍질 식욕 자극
생선구이 맛집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수십년 경력을 지닌 식당 사장이 연탄불 앞에서 석쇠에 올린 생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굽는 모습이다. 그의 경험에서 나오는 불 조절과 시간이 생선구이의 맛을 좌우한다.
수산식품팀은 생선구이 생명인 이른바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을 살리는데 집중했다. CJ제일제당이 오랜 시간 연구 끝에 내놓은 해답이 300도 이상 증기를 내뿜는 오븐이다.
윤 연구원은 "생선 내부까지 단시간에 가열하는 방법으로 수분 손실 최소화에 성공했다"며 "조리 직후 급속 냉각과 질소 포장으로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방 산패를 제어했다"고 비결을 설명했다.
비비고 생선구이 포장을 뜯는 순간 CJ제일제당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당장 젓가락질이 갈 정도로 노릇노릇한 껍질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소비자가 생선구이에 접근하는 시각을 최우선 고려한 전략이다.
윤 연구원은 "노릇노릇한 껍질과 잘 익은 살코기 조화를 좋아하는 소비자가 많다"며 "눈으로 먹고 맛으로도 먹는 비비고 생선구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