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 3시간"…샤넬 매장에 '코로나19' 두려움 따윈 없었다
2020.05.13 06:30
수정 : 2020.05.13 10:55기사원문
(서울=뉴스1) 배지윤 기자 = "대기번호 79번입니다."
12일 낮 12시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샤넬 매장 앞. 예상치 못한 대기 인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집단 감염이 발생한 이태원과 6㎞ 남짓한 거리의 이곳에서는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는 온데간데없었다. 샤넬 핸드백 가격 인상 소식에 오히려 매장은 방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소비 심리가 위축됐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2시간 40분쯤 흘렀을까. 오랜 기다림 끝에 기자도 매장에 들어섰다. 매장은 이미 20~30여명 남짓 되는 손님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인기 상품의 재고는 넉넉하지 않았다. '오픈런'(오픈 시간에 맞춰 매장으로 방문하는 것) 대란으로 대부분의 인기 제품은 동이 난 상태였다.
판매 직원에게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클래식·보이샤넬 핸드백 재고가 있는지 묻자 "보이샤넬 블랙은 앞 손님이 사가서 물량이 없다. 유색 제품밖에 없다"며 "클래식 라지 핸드백은 재고가 남았다"며 핸드백을 꺼내왔다. 그러면서 "지금도 792만원인 제품이라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를 것"이라고 귀띔했다.
◇"100만원 오르기전에 얼른"…'마스크 대란' 못지않은 명품 대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은 오는 14일 클래식백·보이백 등 일부 인기 핸드백의 가격 인상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약 8개월 만이다. 가격 인상 폭은 7~17% 가량으로 알려졌다. 대표 제품인 '클래식 미디엄 핸드백'은 715만원에서 15%가량 오른 820만원으로 인상될 전망이다.
가격 인상 소식에 마음이 조급해진 A씨(32)도 이날 샤넬 매장을 방문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바깥 활동을 자제해오던 그가 점 찍어둔 핸드백을 구매하기 위해 일찍이 집을 나선 것. 이번에 원하는 제품을 구매하지 못하면 생돈 100만원을 더 주고 제품을 구매해야 하는 상황 때문이다.
A씨는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로 백화점에 나가는 것이 망설여졌지만 가격 인상 전에 혹시나 원하는 핸드백 물량을 구매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직장에 휴가까지 내고 나왔다"며 "평일인 데다 코로나19 재확산 조짐까지 보이는데 대기가 이 정도일 줄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매장에 입장했다고 해서 원하는 제품을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인기 있는 '클래식 미디움' 핸드백의 경우 80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에도 재고가 없어 제품을 구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다. 원하는 상품의 재고가 없으면 기다린 게 헛수고가 되는 셈이다.
이날만 매장 두곳을 방문했다는 B씨(40)도 "현대백화점 본점·압구정 갤러리아 두 곳을 방문했지만 결국 원하는 제품이 없어서 구매하지 못했다"며 "내일 마지막으로 잠실 에비뉴엘 매장에 가볼까 한다. 물량이 없으면 비인기 색상으로 구매해야겠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도 넘은' 가격 인상에도…명품업계 호황, 왜?
명품업계 가격 인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도 넘은 가격 인상은 너무하다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지만 이른바 '명품족'(명품을 고집하는 사람들)들은 여전히 각종 명품 구매에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있다.
오히려 가격 인상 소식은 명품업계에 '호재'로 작용했다. 가격 인상 전에 제품을 구매하는 게 낫다며 '통 큰' 소비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샤넬 외에도 이달 들어 루이뷔통·티파니·셀린 등 LVMH 계열의 명품 브랜드들도 잇따라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특히 루이뷔통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세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3월 3~4% 가격을 인상한 데 이어 두 달 만에 또다시 몸값을 올렸다. 루이뷔통은 가격 인상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소비 욕구를 분출하는 '보복 소비' 심리가 커지면서 주말마다 매장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다만 이처럼 명품에 지갑을 여는 이들도 있는 반면 과도한 가격인상 탓에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코로나19를 비롯한 경제 위기 때도 국내 소비자들의 끊임없는 명품 수요가 무분별한 명품 가격 인상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명품족'들 사이에서는 '명품은 오늘 사는 게 제일 싸다'는 말이 있다. 고민하다가 100만원을 더 내고 제품을 살 바에 차라리 지금 구매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라며 "명품 브랜드들이 아무리 제품 가격을 인상하며 '배짱 영업'을 하더라도 소비는 꾸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