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2020.05.18 11:58   수정 : 2020.05.18 11:58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광주=황태종 기자】18일 열린 5·18민주화운동 제40주년 기념식은 크게 두가지 점에서 예년과 달리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먼저 기념식 장소다. 이번 기념식은 지난 1997년 5·18민주화운동이 정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처음으로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옛 전남도청앞 민주광장에서 열렸다.

그동안은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만 거행돼 왔다.

40주년 기념식이 열린 옛 전남도청은 5·18 당시 항쟁 지도부가 있었으며 광장 분수대를 연단 삼아 신군부의 계엄에 맞서 각종 집회를 열고 항쟁 의지를 불태웠던 역사적 현장이다.


당시 5월 18일부터 최후 항쟁을 벌였던 27일까지 10일 동안 매일 수만명의 군중이 운집했으며 '계엄해제와 민주주의 수호' 등의 구호를 외쳤다.

계엄령에도 시위가 계속되자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동원해 진압에 나섰으며 21일 오후 1시 옛 전남도청 옥상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림과 동시에 집단발포로 이어져 수많은 생명이 쓰러졌다.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광주'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지만으로 총기를 구해 군부대에 맞섰다. 계엄군은 같은날 오후 옛 전남도청에서 나와 외곽으로 피했다.

이후 광주는 무정부 상태가 됐지만 옛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결성된 시민군이 치안을 유지했고 절도와 강도 등 강력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는 시민군들에게 주먹밥을 나누어 주며 항쟁에 동참했다.

하지만 신군부는 시민들을 폭도, 북한 공작원으로 규정하고 5월 27일 오전 4시 헬기와 총칼을 동원해 광주 재 탈환에 나섰다.

옛 전남도청을 끝까지 지키고 있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 등 수십명이 목숨을 잃어 열흘간의 무장 항쟁은 막을 내렸다.

당시 진압작전 때 25명이 숨졌으며 200여명이 신군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5월단체 관계자는 "옛 전남도청에 끝까지 남아 신군부에 맞섰던 열사들의 피가 서려있는 곳에서 정부가 5·18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행사를 하는 것은 정부가 그날로 인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또 "남아있는 세대가 40년이 되도록 풀리지 않고 있는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 등을 찾아서 한을 풀어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또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가족인 대학생(차경태·김륜이씨)이 처음으로 5·18기념식 경과보고를 했다.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가치를 청년 세대가 계승한다는 취지다. 예전 경과보고는 박근혜 정부에서는 광주지방보훈청장이 맡았고,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5월 단체장이 맡아왔다.

차경태·김륜이씨는 "5·18을 단순히 지나간 일이 아닌 살아있는 역사로 제대로 알고 기억해 나가겠다. 진실을 마주하고 정의를 지킬수 있도록 제대로 배우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기념사에서 "오월 정신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희망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이 정신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미래를 열어가는 청년들에게 용기의 원천으로 끊임없이 재발견될 때 비로소 살아있는 정신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hwangtae@fnnews.com 황태종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