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길모퉁이 끝엔 뭐가 있을까.. 자꾸만 빠져드는 골목여행
2020.05.22 08:31
수정 : 2020.05.22 08:31기사원문
■세종대왕과 함께 떠나는 골목 여행, 여주한글시장
경기 여주한글시장에는 이색 벽화골목이 있다. 이곳은 세종대왕 탄생부터 즉위, 업적 등을 재미있게 그려놓은 곳이다. 아기자기한 벽화를 구경하며 세종대왕의 삶과 업적을 더듬어본다. 또한 말뚝박기 같은 추억의 놀이를 담은 벽화도 있어 가족끼리 이야기꽃을 피우기 좋다. 생활문화전시관 '여주두지'는 여주 주민에게 들은 이야기와 채집한 물건을 전시한 공간으로, 소소하지만 따스한 사연을 만날 수 있다. 여주한글시장에는 소년 세종 동상과 인자해 보이는 세종대왕 동상이 있어 포토존으로 인기다. 포토존 부근에서 한글빵을 판다. 빵 위에 자음이 찍힌 찹쌀빵으로 달콤하고 쫀득하다. 시장의 또 다른 재미는 한글을 발견하는 일이다. 바닥에 훈민정음이 새겨졌고, 하늘에 알록달록한 한글 작품이 걸렸다. 밤이 되면 루체비스타 조명 시설에 불이 들어와 색다르다. 북벌 개혁을 시도한 효종대왕이 잠든 여주 영릉(寧陵)과 남한강 풍광이 고즈넉한 여주보도 가깝다. 물시계인 자격루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보 기둥과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형상화한 세종광장이 독특하다.
■길을 잃어도 괜찮아, 원주 미로예술시장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을 따라 개성 있는 상점이 늘어선 미로예술시장은 강원도 원주중앙시장 2층에 위치한다. 원주중앙시장은 1970년 건립한 2층짜리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재건축 없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1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져 방치된 2층이 2010년대 들어 문화 관광형 시장과 청년몰 사업 등에 선정되면서 달라졌다. 공방과 카페, 문화 공간이 어우러져 뉴트로 분위기가 풍기는 시장으로 재탄생했다. 시장은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4개 동으로 나뉜다. 각 동은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가동은 오래된 양복점이나 금은방이 눈에 띄고, 다동은 체험 공간이 다양하다. 나동은 2019년 발생한 화재로 현재까지 대부분 영업을 못 하는 상태다. 벽화, 조형물, 일회용 카메라 자동판매기 등 골목 곳곳에 숨은 재미를 찾아보자. 원주레일파크 역시 버려진 공간을 활용한 명소다. 걷기를 좋아한다면 치악산 자락을 따라 걷는 치악산둘레길을 추천한다. 현재 3개 코스를 개통했다. 치악산까지 갔다면 원주8경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구룡사도 들러보자.
■시간을 되짚어 만나는 뉴트로 감성, 당진면천읍성 성안마을
충남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일대는 '성안마을'로 불린다. 당진면천읍성(충남기념물 91호) 안에 터 잡은 마을이기 때문이다. 순천 낙안읍성(사적 302호)과 청주 상당산성(사적 212호) 마을이 우리나라 대표 성안마을로 꼽히는데, 당진면천읍성 성안마을은 분위기가 다르다. 성안엔 상당산성처럼 번듯한 식당도, 낙안읍성처럼 예스러운 초가도 없다. 대신 손때 묻은 집과 소박한 식당, 이발소, 전파상 등이 골목골목을 채운다. 시곗바늘을 반세기 정도 거꾸로 돌린 듯한 풍경은 무뚝뚝한 충청도 사내처럼 속깊은 정이 느껴진다. 옛 면천우체국을 리모델링한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과 동네 책방 '오래된 미래', 책방과 나란히 자리한 '진달래상회'는 이곳을 감성 여행지로 만든 주역이다. 당진면천읍성 성안마을의 따뜻한 감성을 잇는 아미미술관, 해돋이와 해넘이를 함께 만나는 왜목마을, 실제 전투함과 구축함 안팎을 다양한 전시 공간으로 꾸민 당진항만관광공사(옛 삽교호함상공원)도 당진으로 떠나는 여행길에 놓쳐선 안 될 곳이다.
■원도심의 정겨움 간직한 곳, 여수 고소동 천사벽화골목
오래된 자연부락인 고소동은 전남 여수를 대표하는 벽화마을이다. 지난 2012년 여수엑스포를 계기로 주민과 여수시가 힘을 합쳐 낙후된 달동네를 벽화마을로 변신시켰다. 진남관에서 출발해 고소동을 거쳐 여수해양공원까지 거리가 1004m에 이르러 천사벽화골목으로 불렀다. 현재 총길이 1115m, 9개 구간으로 구성된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걷다보면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보물 571호)와 타루비(보물 1288호), 마실 나온 주민, 바다를 바라보는 카페, 만화가 허영만 화백 작품의 다양한 주인공 등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불쑥불쑥 나타나는 여수 앞바다와 돌산대교, 거북선대교 조망이 일품이다. 고소동 천사벽화골목이 끝나는 지점이 여수해양공원이다.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공원을 걷다보면 이순신광장에 닿는다. 내부를 볼 수 있는 거북선 모형과 용 모양 전망대가 있고, 광장에서 쉬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여수 여행의 마지막은 야경. 여수 밤바다의 수려한 경관을 즐기기 위한 최고의 포인트는 돌산공원 전망대다.
■옛담 따라 흐르는 고고한 선비 정신, 산청 남사예담촌
경남 산청 남사예담촌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가(古家) 마을로, 황톳빛 담장과 고택이 어우러져 골목마다 옛 정취가 잔잔히 배어난다. 산청남사리이씨고가(경남문화재자료 118호)에서는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 구조와 음양의 조화를 꾀한 선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으며, 유교 전통이 깃든 산청남사리최씨고가(경남문화재자료 117호)와 사양정사(경남문화재자료 453호)도 눈에 띈다. 하씨고가에는 산청 삼매 중 하나인 원정매가 있다.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사수천(남사천)을 건너면 국악계의 큰 별로 꼽히는 박헌봉 선생을 기념한 기산국악당, 백의종군하는 이순신 장군이 묵어갔다는 산청 이사재(경남문화재자료 328호), 유림독립기념관까지 두루 다녀올 수 있다. 남사예담촌은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둘러보기를 권한다. 산청 조식 유적(사적 305호)과 성철 스님 생가터에 세운 사찰 겁외사(劫外寺)도 남사예담촌과 한 코스로 짜기 좋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