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2020.05.21 16:46
수정 : 2020.05.21 16:46기사원문
간송미술관의 문화재는 청년 전형필(1906∼1962)의 피와 땀, 집안의 막대한 재력으로 지켜진 것들이다. 간송이 우리 문화재 수집을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스물세살 때다.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고희동이 그의 고교 스승으로 간송의 초기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 사재를 털어 문화재를 사들였는데 그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증조부부터 지금 광장시장과 동대문시장의 모태인 배오개시장 거상이었다. 그 재력으로 전답을 구입해 1년에 거둬들인 쌀이 당시 기와집 150채를 사고도 남았다고 한다. 이를 물려받은 간송은 10만석지기, 국내 자산서열 10위 안에 꼽힐 정도였다. 상속금은 일본에 유출될 뻔한 문화재를 다시 되찾아오는 데 썼다. 영국인 미술품 수집가 존 갓스비로부터 고려청자 컬렉션을 인수할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대대로 내려오던 공주 전답을 팔아 40만원을 지불했다. 기와집 400채 값이었다.
국고보조금 한푼도 없었던 미술관은 간송 이후 장남과 차남, 장손 등 3대로 이어지면서 재정난을 겪었다. 급기야 국가보물로 지정된 금동 불상 2점이 27일 열리는 케이옥션 경매에 나온다고 한다. 2년 전 간송의 장남 전성우 재단이사장 타계 후 부여된 막대한 상속세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이 같은 결정을 했다. 전 재산을 털어 지킨 문화재가 상속세 때문에 경매로 팔리다니.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2배 정도 된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