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응축된 옛 백제의 수도 부여를 가다

      2020.06.11 10:50   수정 : 2020.06.11 10:57기사원문
【부여(충남)=조용철 기자】'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부여가 낳은 민족시인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속 시구처럼 코로나19로 얼어붙었던 봄이 지나 어느덧 산과 들의 신록이 우거지는 여름이 찾아왔다. 그가 자유에 대한 열망과 그리움을 절절히 노래했던 이곳 충남 부여에서 그토록 그리웠던 여름의 향기를 조금 일찍 맡을 수 있지 않을까.

백제역사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지난 1994년부터 2010년까지 총 17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탄생한 '백제문화단지'는 부여 여행의 출발지로서 삼아볼 만하다. 이곳은 그 흔적을 상당수 잃어버려 아련하기만 했던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오감으로 생생히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부여 여행의 출발지, 롯데리조트 앞 백제문화단지
45만㎡(약 13만6000평)이라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백제문화단지는 국내 최초로 백제시대 왕궁을 재현한 사비궁을 포함해 전국 유일 백제사 전문 박물관인 백제역사문화관 등이 자리한 국내 최대 규모의 백제 역사 테마파크다. 사비궁의 중심이 되는 천정전은 궁궐 내 상징적인 공간으로 신년하례식이나 외국사신 접견 등의 주요 왕실 행사가 치러졌다.
그 옆으로는 단지 내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우아한 곡선의 능산리사지 오층목탑이 우뚝 솟아있다. 실제 중요무형문화재 장인들이 목탑 복원에 대거 참여해 백제의 뛰어난 기술력을 엿볼 수 있다. 넓은 단지를 한적하게 걸어보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과 함께 한다면 재미난 백제 역사 해설이 함께 하는 트램열차를 이용해보는 것도 좋다.

흔히들 낙화암이라고 하면,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전설이 떠오를 것이다. 왕궁의 후원이자 최후 방어성이었던 부소산성에 오르면 낙화암과 더불어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 여인들을 기리는 백화정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되는 법인만큼 유독 사치스럽고 방탕하게 묘사된 의자왕의 이미지나 낙화암의 전설은 후대의 상상력에 기인한 부분이 많다. 이에 낙화암을 죽은 딸을 향한 태종무열왕의 그리움이 귀결된 곳으로 새롭게 조명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641년 왕위에 오른 의자왕은 내부 권력의 기반을 다진 뒤 외부적으로는 신라의 요충지인 대야성 등 40여성을 함락시켜 신라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함으로써 그 위상을 과시했다. 이중 대야성 성주의 아내가 김춘추의 딸 고타소였다. 딸의 사망 소식을 들은 김춘추는 기둥에 기대서서 종일 눈을 깜빡이지 않고, 사람이 지나가도 알지 못할 정도로 슬퍼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슬프도다. 어찌 대장부가 되어 백제를 멸하지 못하랴"고 외치며 백제 멸망에 온 힘을 쏟기로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김춘추는 고구려, 왜, 당을 직접 방문하며 목숨을 건 외교전 끝에 당과 군사연합을 맺게 되었고, 왕위에 올라 결국 백제 의자왕의 항복을 받아내며 백제를 멸망시켰다. 자식을 잃은 아비의 그리움이 한 나라를 멸망에까지 이르게 한 셈이다.

금강 하류의 부여 일대를 가르는 백마강은 무령왕 시대 백강(白江)으로 불렸고, 역사적으로 '말(馬)'이 '크다'라는 뜻으로 써온 것을 감안해 '백제에서 가장 큰 강'을 뜻할 것이라고 추측된다. 유유히 물결을 가르며 탁 트인 백마강 위를 지나는 황포돛배는 부소산성과 부여 읍내를 이어주는데,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부여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이어준다. 낙화암 쪽에서 배를 타고 구드래 나루터에 내리면 화사하게 핀 꽃들과 더불어 부여 일대 출신의 조각가들이 만든 조각상들을 만날 수 있다.

부여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임천면 구교리에는 최근 SNS상에서 화제를 모은 인증사진 명소가 있다. 일명 '하트나무'가 심어진 성흥산성이다. 백제시대 산성으로 원래 이름은 '가림성'이었으나, 성흥산에 자리하고 있어 '성흥산성'으로 더 많이 불린다. 이 산성은 백제 24대왕 동성왕 때 축조됐다. 삼국사기에는 "동성왕 23년(501년) 8월에 가림성을 쌓고 위사좌평 백가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백가는 가림성 성주 자리에 불만을 품고 자객을 보내 동성왕을 시해하는 반란을 일으켰으나, 25대 무령왕이 즉위하면서 반란은 진압됐고 백가는 참형돼 백마강에 버려졌다고 한다. 현재 성흥산성은 사랑나무 인증사진 외에도 매년 1월 1일 해맞이 행사가 개최되는 등 부여 일대 일출, 일몰 명소로 재탄생하고 있다.

어느덧 짙은 어둠이 내려앉으면, 첫 출발지였던 백제문화단지 맞은편 롯데리조트부여의 화려한 야경과 조우할 수 있다. 총 11층 높이에 310개 객실 규모로 지어진 롯데리조트부여는 백제 예술의 미를 담은 우아한 곡선들이 인상적이다. 건물 외관에 조그마한 사이즈로 부착된 색색의 패널들은 소박한듯 다채로운 부여 여행의 묘미를 보여주는 듯하다. 국내 최초로 조성된 리조트 입구의 원형회랑은 각종 유명 건축상을 수상하기도 한만큼 꼭 리조트에 묵지 않더라도 한번 둘러볼 만하다.

■부여 여행도 식후경, 장원막국수 & 시골통닭
'막국수'라는 이름은 과거에 메밀껍질을 분리하지 않고 맷돌에 막 갈아 국수를 만들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주재료인 메밀은 체내의 열을 내려주고 소화를 돕는 효능이 있어 봄, 여름 섭취하기에 특히 좋다. 황포돛배를 타고 구드래 나루터에 도착하면, 정겨운 한옥집 입구에 긴 세월을 이겨낸 듯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장원막국수다. 이곳의 면은 얇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유달리 살코기 비율이 높은 편육은 얇게 썰어내 퍽퍽함이나 질긴 식감 없이 막국수와 후루룩 넘기기에 그만이다.

부여 로컬 맛집으로는 이른바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맛)'이 제대로인 통닭집도 있다.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 3대천왕'의 '치킨'편에 선정된 부여 시골통닭은 부여읍 구아리 중앙시장에 오랫동안 자리해 있다.
3대천왕으로 선정되기 전부터 현지 주민들에게는 삼계탕이 맛있는 집으로도 유명했다. 1975년 방순남 할머니가 문을 열었고, 이제 그 아들이 2대째 손맛을 이어가고 있다.
땅콩가루를 섞은 튀김 옷은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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