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학생 부모가 카톡프로필에 ‘학폭범 접촉금지’.."가해자 명예훼손 아냐”
2020.06.16 12:00
수정 : 2020.06.16 12: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학교폭력으로 피해를 당한 학부모가 가해학생에 대해 피해학생 접촉 및 보복행위 금지 결정이 내려진 뒤 SNS 프로필에 ‘학교폭력범 접촉금지’라는 단어를 설정했더라도 가해학생에 대한 명예훼손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아동복지법 위반 및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41.여)의 상고심에서 명예훼손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부산지법 형사항소부로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이씨는 2017년 7월 부산의 한 초등학교 학교폭력위원회의 결정에서 같은 반 남학생으로 자신의 딸에게 학교폭력을 행사한 가해학생 A군을 다른 반으로 전반시키는 등 딸과 격리조치 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후 이씨는 교실 앞 복도에서 A군을 만나자 “야, 내가 누군지 알지. 나 B엄마다. 앞으로 B건들지 말고, 아는 체도 하지마라”고 했다. 이어 다음 날 등교시간 무렵 A군이 등교하는 모습을 보고는 “야 A, 너 나 아는데 왜 인사 안해”라며 교실 앞 복도를 걸어 다니며 A군을 계속 쳐다보고, 하교시간 무렵 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에서 만난 A군에게 “야, 방학 때 B랑 가까이 하지마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씨가 A군에게 심리적 위협을 가하는 정서적 학대를 했다며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이씨가 학교폭력 자치위원회에서 A군에게 ‘B양에 대한 접촉, 보복행위 금지’ 등 결정이 내려질 무렵 카카오톡 프로필 상태메시지에 ‘학교폭력범은 접촉금지!!!(주먹 그림 세개)’라는 내용을 설정한 것도 문제삼았다.
총 19명의 같은 반 학부모들이 수시로 대화를 주고받는 단체카톡방에 등록된 사람은 누구나 카카오톡 프로필 상태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A군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A군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1심은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보고 이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는 “A군에게 한 행위가 다소 부적절한 측면이 있기는 하나, 그런 행위가 아동이 사물을 느끼고 생각해 판단하는 마음의 자세나 태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성장하는 것을 저해하거나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유기 또는 방임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무죄로 봤다. 다만 명예훼손 혐의는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사실을 공연히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유죄로 보고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학교폭력범’ 자체를 표현의 대상으로 삼았을 뿐 특정인을 ‘학교폭력범’으로 지칭하지 않았다”며 “학교폭력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과 초등학생 자녀를 둔 피고인의 지위 등을 고려하면, ‘학교폭력범’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실제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에 관해 언급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이어 “‘접촉금지’라는 어휘는 통상적으로 ‘접촉하지 말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되고, 이 사건 의결 등을 통해 A군에게 B양에 대한 접촉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는 사실이 같은 반 학생들이나 부모들에게 알려졌음을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