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믿지 마라… 코로노믹스 핵심은 '각자도생'

      2020.06.22 17:19   수정 : 2020.06.22 19:44기사원문
【 베이징=정지우 특파원】 코로나19가 변화시킨 것은 개인 삶의 방식뿐만이 아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글로벌 네트워크 균형 대신 자국 우선주의, 즉 각자도생의 길을 강요했고 공고했던 동맹·공생·협력 관계의 질서도 무너뜨렸다. 세계적 생산·공급 시스템이 코로나19 전파 경로가 되고 자국의 정치·경제·사회를 뒤흔드는 상황에서 다른 국가의 사정까지는 고려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줄서기를 압박하는 '신냉전'의 출현을 예고했으며 이에 반발한 일부 국가는 '마이웨이'의 다극체제를 외치기도 했다. 말 그대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 시대'가 열린 셈이다.


■포스트 코로나는 세계화의 붕괴

코로나19 이후 시대, 즉 포스트 코로나의 두드러진 현상은 세계화의 붕괴다. 당초 중국 후베이성 우한이라는 일부 지역에 불과했던 코로나19는 그동안 구축해놓은 세계화 교역 노선을 타고 중국 전역, 아시아, 유럽, 중동, 미주를 거쳐 아프리카까지 순식간에 점령했다. 각국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지만 때는 늦었다. 결국 선택한 것은 봉쇄와 통제다. 자택격리와 영업중단, 공장 가동중지부터 국경 차단까지 할 수 있는 빗장은 모두 걸어 잠갔다. 자국의 경제발전 극대화를 위해 수십년간 진행된 세계화가 코로나19를 만나면서 '재앙의 근원'이 된 셈이다.

강도 높은 방역은 다시 교역 중단을 불러왔다. 코로나19의 이동경로가 된 세계화를 차단하자 무역·유통의 글로벌 혈맥이 멈추는 악순환이 이어진 것이다. 이미 미국, 중국 등 세계 주요 교역국의 수출은 올해 들어 줄곧 밑바닥에서 헤매며 이런 현상의 부작용을 보여주고 있다. 각국이 통제를 다소 풀면서 점차 회복세를 나타내긴 하지만 코로나19의 2차 확산이 우려되는 현 시점에서 마냥 낙관론을 기대하긴 힘들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의 공통된 분석이다. 세계은행은 이런 영향으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5.3%로 관측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당초 -3.0%에서 추가 하향조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11일 국회에 제출한 '6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각국의 전례 없는 봉쇄조치가 글로벌 공급 차질, 구매활동 제한, 통관·물류 지연 등으로 이어져 자국 내 경제활동뿐 아니라 글로벌 교역도 크게 위축될 것"이라며 "그 정도는 금융위기 당시보다 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스티븐 월트 교수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와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 과도한 세계화로부터의 후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탈세계화는 함께해서 얻는 이익이 손해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전통적으로 유지해온 협력과 공생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내다 팔 국가가 없는데, 수출을 위한 제조업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음 수순은 반드시 부분적 교역 혹은 내수 중심으로 세계경제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장은 "코로나19 위기는 적어도 수년 내에 대부분의 나라들을 내부지향적으로 이끌고 각국 정부는 국경 밖보다 국경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美中 중심의 이합집산

이 같은 현상은 미국과 중국 등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자국 기업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고 중국이 홍콩·대만 등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에 강도를 높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자국 우선주의 깃발 아래에 끼리끼리 뭉쳐서 생존하는 자급자족의 길을 걷겠다는 것이다.

미·중이 대립하는 상황을 포스트 코로나 시대 특징으로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이제 더 이상 협력과 양립이 어렵게 된 만큼 무한경쟁이 불가피하고 여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세력을 넓히는 현재 양상을 반영했다.

미·중 양국은 지난해 1차 무역합의문에 서명한 뒤 한동안 휴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올해 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 바이러스 전파에 대한 책임론부터 무역·투자·자본·정보기술(IT)·군사 갈등, 대만 분쟁, 홍콩 국가보안법 등 사사건건 마찰을 빚고 있다. 그러면서 주변 국가나 우호 국가들에 '줄서기'를 강요하고 있다. 일부는 자발적으로 이 줄에 들어갔다. 영국과 캐나다, 호주,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은 일찌감치 미국편에 섰고 러시아, 북한, 동남아국가들은 중국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 편도 들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긴 했지만, 미국 중심의 서방국가와 중국을 축으로 하는 아시아 국가의 새로운 이합집산이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의 배경이다.

글로벌 공급망 사슬의 붕괴는 미국과 중국 일변도의 세계흐름을 다극체제로 전환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세계 산업구조와 통상환경이 디지털 기술 발전과 일방주의 확산, 인적·물적 이동 제한 등의 영향을 받아 코로나19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종합하면 옛 우방 혹은 우호국 개념은 사라지고 미·중 강대국 주위로 때때로 뭉치고 흩어지면서 자국 생존을 극대화하는 다극체제로 갈 것이라는 진단이 전문가들 목소리로 표현된다.

■공급망 차단·양극체제 변화의 위기

수출 중심의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 사슬이 끊기는 것 자체가 위기다. 한국 정부가 내수·수출 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 비대면·디지털 투자 등을 포스트 코로나 이후 경제 대비책으로 서둘러 내세우는 것도 이런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중순 대외경제정책장관회의에서 "세계 경제여건 악화로 국제교역이 급감하면서 우리 경제의 수출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당장의 수출급감 대책을 넘어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수출역량을 높이고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 가능성에도 대비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주문했다.

미국엔 안보를, 중국엔 경제를 각각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처럼 '줄서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신뢰를 다소 잃더라도 국가 생존이 걸린 사항이기 때문에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양자택일을 강요받지 않는 것이 좋다"면서 "이후 우리와 비슷한 국가의 전체 흐름을 보면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jjw@fnnews.com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