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 없어도 정규직" 불공정 취업시장에 격분하는 고시촌 취준생들
2020.06.24 15:22
수정 : 2020.06.24 15:22기사원문
"여기서 2년을 먹고살아도 이 신세인데…허탈하죠"
24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A학원. 마스크를 쓴 학생들이 좁은 강의실에서 간격을 두고 자습을 하고 있다. 무언가를 분주하게 적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지친 듯 졸고 있는 학생도 눈에 띈다. 강의실 복도 벽 곳곳에는 '노력 후에 보상이 따른다'는 문구와 함께 코로나19 방역수칙이 붙어 있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한 학원을 나서는 한 학생에게 '학원 얼마나 다녔냐'고 묻자 2년을 다녔다고 한다. 혼자 밥을 먹으러 간다는 이 학생은 "모든걸 포기하고 공부만 해도 취업하기 어려운데 '공짜로 취업하는 사람들'을 보면 허탈하다"고 말했다. 이 학생이 말한 '공짜로 취업하는 사람들'은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자를 뜻했다.
■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에 취준생 "허탈해"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보안 검색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1902명을 직접 고용한다고 밝힌 이후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인천공항 근무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오픈채팅방에서 한 이용자가 글을 올리며 논란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이 글은 "22세에 알바천국을 통해 보안요원으로 들어와서 정규직 전환이 된다" "SKY 대학 나와서 뭐하냐, 나는 남들 5년 버릴 때 돈 벌면서 서울대급 됐다" 등 내용이었다.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관련 채팅방 내용을 둘러싸고 진위 공방이 벌어지고 있으나 취업 길이 꽉 막힌 취업준비생들에겐 사실 여부를 떠나 극도의 자괴감을 남겼다.
취업포털 사이트 인크루트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은 3년 연속 대학생이 가장 일하고 싶은 공기업 1위에 꼽혔다. 공기업을 목표로 하는 취준생 사이에서 인천국제공항은 '꿈의 직장'으로 통한다. 이곳에 취업하기 위해선 토익 900 후반대 점수와 기사자격증, 롤플레잉·토론·영어·PT면접이 필수라는 이야기가 떠돈다.
수년간의 노력에도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급에 속한다는 인천공항 취업과 관련해, 비정규직이 직접 고용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수의 취준생들은 박탈감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노량진 학원가 거리에서 만난 31세 조모씨는 "대학 졸업하고 공기업만 준비하다 5년이 넘었는데 단기 계약직만 해보고 정규직은 다 떨어졌다"라며 "일반 기업에 신입으로 취업할 나이마저 놓쳐서 갈 곳도 없는데 인천공항 소식을 들으니 정말 힘들더라"라고 털어놨다.
경남 김해에서 올라와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다는 20대 최모씨는 "사회에 비정규직이 줄어들면 환영해야 할 일인데 그러지 못하고 좌절감을 느끼는 내가 초라해진다"라며 "비정규직 전환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노력하는 사람에게 먼저 기회가 갔으면 좋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 역대 최저 고용률에 싸늘한 학원가 "사회 불신 깊어져"
코로나19 장기화로 고용시장이 위축되자 20대 고용률은 역대 최저 수준에 이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취업자 수는 2693만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39만2000명이 감소했다. 이 가운데 20대 취업자 감소폭은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 13만 4000명에 달해 1982년 통계작성 이래 최저로 떨어졌다.
노량진 학원가에선 이러한 악조건들이 취업생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량진 한 공무원시험 관계자는 "자신에게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에 초조함을 느끼는 학생이 많다"라며 "하면 된다는 희망이 있어야 되는데 취업률은 떨어지고 불공정 논란이 일고하니까 동요하지 않겠나"라고 되물었다.
취업 불공정에 대한 논란은 갈 길이 바쁜 재수생과 N수생들의 정책 불신으로도 번졌다.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미래가 불안하다는 것. 재수생 김모씨는 "코로나19 사태에도 입시 관련해서 마땅한 대책 하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입시나 취업이나 불공정한 일이 많아 혼란스럽다"고 전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