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왕국 일본도 모바일페이… 전세계 '비대면 경제' 시험대
2020.06.28 17:21
수정 : 2020.06.28 21:29기사원문
【 도쿄·베이징·서울=조은효 정지우 특파원 홍창기 박종원 기자】 세계 주요국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화두로 '비대면 경제(untact economy)'에 주목하고 있다.
비대면 경제는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우려와 공포로, 온라인과 모바일 등을 통한 디지털화된 일처리 방식을 말한다.
'접촉을 통한' 경제활동은 이미 천문학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아시아개발은행이 추산한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세계경제 손실규모는 최대 1경818조원(5조8000억달러)에 이른다.
대부분이 사람간 접촉과 직접 이동이 있어야 가능한 기존 경제활동 영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각국과 주요 기업들은 비대면경제 산업에 막대한 예산과 자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을 앞당길 것이란 계산도 작용했다. 국제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는 코로나가 디지털화를 촉진할 강력한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소비의 비대면(온라인 거래), 노동의 비대면(재택근무 등)이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안전에 대한 욕구, 그로 인한 개인화, 의외의 효율성, 자유로움 등으로 다시는 코로나 이전의 세계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본의 저명 건축가인 구마 겐고는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코로나 사태를 통해 사람들은 자유를 중시하게 됐다"며 "큰 상자(빌딩)를 만들어 그 안에 사람들을 불러모아,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상자 도시'에 종언이 왔다"고 역설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비대면 경제로의 이행이 코로나 실직을 가속화하고, 종국엔 사람간 온기마저 앗아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세계 각국은 그야말로 좌충우돌이다. 비대면경제, 과연 성공할 것인가. 주요국 시민들이 이미 그 실험에 동참했다.
■ 日 물만난 모바일 페이산업
일본의 모바일 페이 산업은 그간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다름없었다. 소프트뱅크그룹의 자회사인 야후 재팬은 모바일 페이사업인 '페이페이(paypay)'분야에서 지난해 822억엔(약 92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누적적자는 1000억엔(1조1200억원)이 넘는다. 여타 모바일 페이 업체들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그럼에도 소프트뱅크, NTT 등은 코로나 사태로 대면접촉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된 지금이야말로, 모바일 페이 사업을 확장할 기회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지난 24일 소프트뱅크 주총에서 미야우치 겐 사장은 "페이페이 등록자가 이번 주 3000만명을 돌파하는 등 비접촉 결제가 코로나 시대에 큰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소프트뱅크는 '페이페이'를 비대면 대출과 모바일 증권거래가 가능한 '슈퍼 앱'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현금왕국' 일본에서도 점점 '현금족'들이 눈칫밥을 먹는 시기가 슬슬 도래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례로 스타벅스 재팬은 코로나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비접촉 지불을 권장한다'는 알림판을 각 매장에 내걸고, 모바일 결제 등을 요청하고 있다.
반면, 일본 사회의 뿌리깊은 현금선호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상당하다. 지난 28일 도쿄 긴자에 새로 문을 연 '유니클로 도쿄' 매장엔 각 계산대별로 현금 정산기가 설치됐다. 코로나 감염을 우려해 물건값과 잔돈을 주고 받지 않도록 고안한 것이다. '현금 대 비현금 결제'간 힘겨루기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일단, 일본 정부와 기업은 디지털화를 이룰 절호의 기회라는 인식은 분명해 보인다. 일본 정부는 이번 코로나 추가경정예산에 총 5900억엔(약 6조6100억원)의 디지털경제 사업예산을 배정했다. 니시무라 경제재정재생상은 최근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게이단렌의 니카니시 히로아키 회장과 만나 디지털 경제 가속화를 위해 '민관합동 공정표' 만들기에 합의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불안도 상당하다. 일본 정부의 디지털 행정 추진에 난데없이 도장협회가 반발하고 있는 것도 비대면경제로의 이행 과정에서 나온 한 단면이다.
■ 동남아 '배달경제' 뜬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음식배달 모바일 플랫폼이 각광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전후해 안전과 편의를 선호하는 동남아 소비자들이 증가하면서다. 음식배달 플랫폼들은 이 지역 소상공인 등과 협력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스타벅스 커피 한잔도 배달되는 베트남에서는 더 그렇다. 평소에도 배달음식을 즐기는 하노이와 호찌민 시민들 10명중 7명이 지난 4월1일부터 15일에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는 베트남 정부가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했던 기간이다. 베트남 시장조사업체 Q&Me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의 75%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배달 앱을 이용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24%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기간 동안 처음으로 배달앱을 이용했다. 이번 조사는 베트남 하노이와 호찌민에 거주하는 84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베트남에서 음식배달 플랫폼의 잠재력은 여전히 크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는 올해 베트남 음식배달 시장규모가 3800만 달러(약 468억원)를 돌파할 것으로 추정했다. 유로모니터는 올해 베트남 배달 서비스업 성장률도 전년대비 11%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베트남 뿐 아니라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도 배달서비스는 특별대접을 받고 있다. 필리핀의 경우 코로나19 확진자수가 급상승했던 지난 5월초에 배달을 조건으로 한 식당 영업만 허용했다. 그랩과 더불어 동남아를 대표하는 음식배달앱 '고젝' 종주국 인도네시아에서도 사회적거리두기 기간 고젝의 영업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 美 '좌충우돌' 온라인 수업
코로나19로 대대적인 원격수업을 시작했던 미국의 학교와 학부모들이 최근 여름방학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교육 현장에서는 새로운 교육방식이 사실상 실패했다고 보고 방학 보충수업은 물론 새학기에도 1학기 수업 내용을 다시 가르쳐야 한다는 분위기다.
CNN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48개주가 휴교령을 내렸다. 최소 5400만명의 초·중·고교생들이 빠르면 3월부터 재택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구글 클래스룸 같은 무료 웹서비스나 학교별로 따로 마련한 교육용 프로그램을 이용해 화상 강의를 수강하고 과제를 제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보도에서 원격 수업 실험이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미 교육지원단체인 북서부평가위원회(NWEA)는 올해 전국 학생들의 1학기 읽기 성취도와 수학 성취도가 평년 대비 각각 70%, 50% 수준이라고 내다봤다.
가장 큰 문제는 환경이다. 거주 지역이 넓고 인종별로 빈부 격차가 극심한 미국에서는 원격 수업에 필요한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는 가정이 한국에 비해 훨씬 많다. 여유가 있는 주정부들은 학생들에게 노트북을 나눠주거나 와이파이 중계기가 설치된 버스를 주택가에 파견 했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LA)학교 통합교육구 당국은 역내 32%의 고등학생들이 원격 수업 프로그램에 접속도 하지 않았다고 추산했다. 미 공립학교 진흥단체인 에듀케이션슈퍼하이웨이는 970만명의 미국 학생들이 온라인에 접속하지 않고 있다며 전국적인 단절 비율이 20%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교사들은 원격수업 기간에 학생에게 낙제를 주지 말라는 방침 때문에 학생들이 과제를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고 학부모들 역시 코로나19로 생계가 어려운 와중에 집에서 아이들 수업까지 관리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에 일부 주에서는 1학기를 조기 종료하거나 수업 내용을 집안일 돕기로 편성했다. 뉴욕시는 역내 110만명의 공립학교 학생 중 10만2000명이 새로 개설한 여름방학 보충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WSJ는 교육 당국이 2학기 수업을 1학기 보충으로 시작할지 고민중이라고 보도했다.
대학가도 사정이 좋지 않다. 지난달 기준 등록금 및 기숙사비 환불 소송에 휘말린 대학들은 50곳이 넘는다. 지난 22일에는 하버드 대학 로스쿨 1학년생이 학교를 상대로 등록금 환불 소송을 냈다. 경영난에 부딪친 알래스카대학은 이달 39개 학과 과정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 中, 대륙에 부는 재택근무 바람
13억명의 중국엔 코로나 확산기,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재택근무 바람을 경험했다. 도시봉쇄 등 관주도의 강력한 이동통제, 사회주의 체제만을 특징으로 한 방역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였다. 크게는 도시 전체가, 작게는 아파트 단지까지 아예 통으로 빗장을 걸어 잠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집에서 경제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구조였다. 이로 인해 한 달 이상 직장으로 출근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중국 시장조사기관 아이메이 리서치에 따르면 올 2월 기준 1800만개 기업에서 직원 3억명 이상이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재택근무나 외출 자제 덕에 자연히 배달, 온라인업계는 호황을 누렸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올해 1·4분기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22% 늘어난 1143억위안(약 19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또 다른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은 1년 전에 비해 20.7% 증가한 1462억위안(24조8000억원)이었고 핀둬둬 역시 코로나 특수로 44% 확대된 65억위안(1조1000억원)을 찍었다.
중국 정부는 아예 이러한 생활의 변화를 신 인프라(SOC)로 보고 대대적인 투자 계획을 세웠다. 5세대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블록체인, 스마트 교통 등 뉴딜 기반시설에 올해만 8조위안(약 1360조원), 향후 5년 동안 48조6000억위안(8262조원)을 쏟아 부을 계획이다. 거리 곳곳에 설치한 폐쇄회로(CCTV)도 올해 안에 약 4억대를 추가 설치해 모두 6억대 이상을 운영할 것으로 알려졌다.
ehcho@fnnews.com 조은효 정지우 홍창기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