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목숨 언제까지 버려야 하나
2020.07.07 16:39
수정 : 2020.07.07 16:39기사원문
관련 기관이 총동원된 모양새다. 비통한 건 어느 곳도 비극을 막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최 선수 측은 지난 2월 가혹행위에 대해 직접 고소에 나섰다. 추가 폭로에 나선 동료 선수들은 경찰의 소극적 부실수사가 고인을 사지로 내몰았다고 한다. "경주경찰서 조사 때 담당 수사관이 "최 선수가 신고한 내용이 아닌 진술은 더 보탤 수 없다"며 일부 진술을 삭제했고, "벌금 20만~30만원에 그칠 것이다. 고소하지 않을 거면 말하지 말라"며 압력을 가했다는 게 선수들의 주장이다. 최 선수는 또 지난 4월 대한체육회에 진정을 냈지만 경주시나 협회와 마찬가지로 시간만 끌었을 뿐이다. 인권위가 진즉 대책을 발표했으면 최 선수 사건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안타깝지만 최 선수의 극단적 선택이 한편 이해가 된다. 그가 선수 생명을 걸고 폭로에 나설 때는 국가의 보호를 믿었을 것이다. 믿음이 배신당하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걸 보고 절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난해 심석희 선수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선수들에 대한 폭행과 성폭력의 실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피해자 보호와 인권침해 대응시스템, 학교체육 정상화와 엘리트 체육 개선 등의 대책이 제시됐다. 문제는 실천이 따르지 않은 것이다. 스포츠·시민단체들의 지적이 그것이다. 이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반복됐던 폭력·성폭력 사건의 처리 과정까지 늘 철저한 조사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고, 체육계의 변화를 얘기했다"면서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최 선수와 같은 비극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 역시 비슷한 과정을 밟을 것이다. 철저한 조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거창한 약속과 미약한 실천이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언제까지 선수들의 인생을 건 폭로, 생명을 건 충격요법에 의존해야 하는가. 먼저 "뿌리 뽑겠다"는 식의 공허한 약속을 믿지 말아야 한다. 뿌리 깊은 악습을 한 번에 청산할 수 있는 묘수는 없다. 지도자와 선수들의 인권교육 등 작은 것부터 실천에 나서야 한다. 스포츠계를 도매금으로 비난할 일은 아니지만 선수들은 외면한 채 이권화된 체육단체 수술도 중요하다. 우리는 아시안 게임, 올림픽, 월드컵까지 모두 유치한 바 있다. 더 이상 메달 수나 등수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국격과 연관이 없을뿐더러 설사 금빛이라도 폭력으로 이룬 성과는 외면당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목숨을 버리지 않아도 일상적 제도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는 국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 정비가 비단 체육계에만 필요한 일이겠는가 돌아봐야 한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