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견뎌낼 수 있었다
2020.07.21 16:20
수정 : 2020.12.24 10:39기사원문
나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왼쪽 얼굴이 터져 버릴 것처럼 아팠기 때문이다. 거의 8년 동안 나는 희귀한 신경성 질환을 앓고 있었다. 하루에 세 번 먹는 약은 통증을 잠시 잊게 해줄 뿐이었다. 완치될 확률은 희박했다. 하지만 최근에 이렇게 입원한 것은 이것 때문이 아니었다.
척추 통증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척추를 안정시키기 위해 경추부에 나사못 6개와 티타늄판을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나는 극심한 통증과 두려움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이런 나에게 이 목사님들이 하나님의 선의를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저희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또 다른 목사님이 물었다. 나는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께서 도대체 왜 저에게 이런 일을 겪게 하시는지 좀 말씀해 주세요. 하나님께선 저에게 뭘 원하시는 걸까요? 왜 도와주시지 않는 거죠?"
목사님들은 힐끗 눈길을 주고받더니 한참 동안이나 침묵했다. 마침내 한 목사님이 입을 열었다.
"하나님께 직접 여쭤보면 어떨까요?"
2007년 8월, 화창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갑자기 왼쪽 얼굴이 불에 타는 듯 아팠다.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삼차신경통(trigeminal neuralgia)이 처음으로 시작된 날이었다. 삼차신경통은 12개의 뇌신경 중 하나인 삼차신경이 기능부전으로 인해 머리와 얼굴에 고통스러운 감각정보를 전송하는 질환이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눈이나 귀나 혀가 번개를 맞은 것처럼 찌르듯 아파왔다. 어떤 땐 누가 벽돌 한 자루로 한쪽 머리를 내려치는 듯한 느낌이 드는가 하면, 아랫입술이 늘 불에 타는 듯 화끈거렸다. 통증이 어찌나 심한지, 멀쩡히 서 있다가 갑자기 다리가 휘청거리곤 했다.
내 나이 오십대. 신문기자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지만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금융분야 종사자인 남편 마이클은 편도 한 시간 거리를 출퇴근하느라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두 아들은 대학에 다니느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대부분의 날을 소파에 잔뜩 웅크리고 앉아 보냈다.
남편은 늘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낫게 해주실 거예요." 남편이 참여하고 있는 남성전도회에서 모임 때마다 매번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있었다. 내 친구들도 전화를 걸거나 카드를 보내주곤 했다.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희망을 잃지 말자!' 나의 이런 흔들림 없는 신앙에 모든 사람이 감탄했다.
교회에서 알고 지내는 디(Dee)는 나의 영적 조언자를 자처했다. 그녀는 매일 아침 전화를 걸어 성경 구절을 들려주며 하루에 최소 세 번 읽으라고 했다. 저녁에도 매일 전화를 걸어 이렇게 물었다. "리아, 오늘의 성경 구절 읽었니? 몇 번 읽었어?" 디는 카드며 편지를 보내곤 했다. 기도 일기를 보내는가 하면, 평화로운 음악과 편안한 목소리로 낭독한 성경 구절이 담긴 CD 같은 것을 보내줬다. 어느날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좋은 소식이 있어. 신앙으로 병을 고쳐주는 아주 용한 분을 찾았지 뭐니. 오늘 밤 너희 집으로 오실 수 있대. 그분한테 안수 기도를 받으면 분명히 병을 고칠 수 있을 거야. 기부금 조금만 내면 된대."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의해야 할 것 같았다. 남편의 대답은 이랬다. "그 언니라는 분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 좋은 교회분인 것은 맞지만 영적 지도자는 아니잖아요. 그분한테 고맙지만 사양하겠다고 말해요."
내 생각도 같았다. 남편의 남전도회를 비롯해 내 가족과 친구들까지 하나님께 기도드리는데도 나를 치유해 주시지 않는다면, 돈을 받고 낯선 사람이 해주는 기도인들 들어주시겠는가? 제의를 거절한 후 디에게서는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았다.
교회의 정기 기도 모임에 참석한 나는 앞으로 나가 장로님들의 안수기도를 받았다. 그 순간 몸이 편안해졌지만, 얼마 안 가 다시 통증이 찾아왔다. 마치 먹구름이 해를 완전히 가려 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진단을 받은 지 2년이 지난 후, 신경전문의는 나를 저명한 신경외과 전문의에게 의뢰했다. 새로운 의사는 나에게 두개골 경골절개술을 권유했다. 안면에 전극을 삽입해 두개골의 미세한 구멍으로 통과시킨 다음, 통증을 유발하는 신경섬유를 파괴하는 수술이다. 수술은 두 시간 안에 끝나며 침습을 최소화한 시술이라고 했다.
"수술을 받고 나면 삼차신경통 통증이 완전히 사라질 겁니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회복실에서 깨어나기 전까지는.
"얼굴이 뜨거워요! 불붙은 것 같아요!" 나는 소리를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에 부채질을 해댔다. 마치 얼굴이 산산조각이 나며 찢어지는 듯했다. 간호사가 황급히 달려와 진정제를 투여했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통증이 더 심해졌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었다.
결국 가장 강력한 진통제를 자가 투여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하게 됐다. 그로 인해 나는 계속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통증은 진정됐다.
"시간이 지나면 삼차신경통이 저절로 호전될 수 있습니다." 의사는 말했다. 그러더니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제가 기도해 드려도 될까요?"
지금까지 왜 다른 의사들은 한 번도 이렇게 묻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나는 의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님, 부디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로 라티머 부인을 고통 속에서 건져 주소서…."
의사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라티머 부인, 성경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한 승리를 부인도 꼭 거두게 될 것이라고 믿어요."
승리라고? 신경성 진통제 없이는 단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는 내가?
며칠 뒤 나는 퇴원했다. 그 후로 몇 주에 걸쳐 서서히 두개골 수술로 인한 통증이 수술 이전의 수준으로 호전됐다.
그 후로 또다시 8년이라는 시간을 삼차신경통과 함께 살아갔다. 살아갔다기보다는 그저 존재하고 있었다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친구들의 연락도 갈수록 줄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전화를 걸어 나와 함께 기도해 주는 사람이 몇 주 동안 단 한 명도 없을 때도 있었다.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신약을 처방받은 후로는 통증의 빈도나 강도가 개선됐다. 통증의 강도가 최대 수치를 10으로 볼 때 8 수준까지 호전됐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대부분의 날을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보냈다. 하루 종일 옷도 갈아입지 않았다.
그러던 중 경추 수술을 받게 되었고, 두 목사님이 병실에 찾아와 나에게 하나님의 선의를 운운한 것이었다.
거추장스러운 경추보호대를 부착한 채 집으로 돌아온 나는 또다시 소파로 향했다. 텔레비전을 켜고 채널을 돌렸다. 채널을 돌리는데 화면에 휠체어를 탄 여성이 등장했다. "이 여성은 사지마비뿐 아니라 만성통증도 겪고 있습니다." 진행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화면을 향해 슬리퍼를 던졌다.
"주님, 한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합니까?"
이렇게 말한 다음 채널을 돌리려는데 무엇인가가 나를 붙들었다. 나는 계속해서 귀를 기울였다. 화면 속의 여성은 40년 동안이나 휠체어를 탔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충만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결혼도 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희망을 전하는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세요. 하나님의 은총은 이미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 직접 여쭤보면 어떨까요? 두 목사님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간청에 이미 응답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는 내 주위를 친절한 친구들과 교회 식구들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들로 가득 채워 주셨다.
나의 생계를 책임져 주고 참을성도 많고 든든한 남편,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두 아들, 내 삶의 모든 고비마다 하나님께서는 은총을 가득 베풀어 주셨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에게 도움을 줄 사람들을 필요한 곳에 두심으로써 말이다. 심지어 신경외과 전문의가 나를 위해 기도도 해주지 않았던가!
이튿날 아침, 나는 잠옷 차림으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대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오디오 성경책을 꺼내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에 관한 성경 구절을 들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 말씀을 드리고는 이렇게 기도했다. 나 자신에게는 덜 집중하고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는 데 더 집중하게 해달라고. 몇 주 후에 나는 교회에서 열리는 여성 제자훈련 프로그램에 등록하는가 하면 아픈 사람들을 위한 중보기도 모임에도 가입했다.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오랜 세월 삼차신경통을 견뎌내도록 하심으로써 당신의 은총을 깊이 경험하도록 하신 것이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돕기를 바라신 것이었다. 마침내 나는 그때 병실에서 목사님들에게 내가 한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았다.
2016년 여름, 나는 삼차신경통이 사라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서서히 약을 끊었다. 통증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수년 전 그 신경외과의가 언급했던 가능성이 실현된 것이다. 나는 가스펠 가수 커크 프랭클린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는 알고 있어요. 해낼 수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어요. 견뎌낼 수 있다는 걸. 그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내 삶을 주님께 맡깁니다."
삼차신경통이 재발할 가능성도 있는데, 만약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이제 견뎌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때마다 나를 보살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방법으로 은총을 조금씩 나누어 주실 뿐, 하나님의 은총은 내가 시련을 헤쳐나가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가이드포스트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 어려움 속에서 꿈을 키워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감동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감동의 이야기를 많은 분들의 후원을 통해 군부대, 경찰, 교정시설, 복지시설, 대안학교 등 각계의 소외된 계층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을 통해 더 많은 이웃에게 희망과 감동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글·사진=가이드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