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째 장외에만' 먼저 제안하고 제발로 나간 민주노총
2020.07.26 12:55
수정 : 2020.07.26 12:55기사원문
1980년대부터 이어온 해묵은 계파갈등이 코로나19 위기국면에서까지 발목을 잡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계파 상당수도 등 돌렸다··· 이유는?
26일 정치권과 노동계에 따르면 당정이 잠정 합의된 전국민 고용보험제 도입, 국민취업지원제 시행 등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대타협안을 민주노총 동의 없이 진행하기로 뜻을 맞췄다. 22년 만에 노사정 대타협에 참여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던 민주노총이 끝내 잠정안 승인을 부결한데 따른 것이다.
민주노총은 23일 노사정 대타협안 승인 안건을 투표에 붙여 대의원 1479명 중 1311명이 참여한 간운데 부결시켰다. 찬성은 499명(38.27%), 반대 805명(61.73%), 무효 7명이었다. 민주노총 각 조직을 대표하는 대의원 스스로 장외로 돌아가기를 선택한 것이다. 대의원은 조합원 500명당 1명씩 선출된다.
2017년 ‘사회적 대화 참여’를 공약으로 건 김명환 위원장을 당선시킨 대의원들이 3년 만에 돌아선 데는 ‘타협하지 않는 자세’를 중시하는 ‘노조 DNA’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합의 반대파는 표결에 앞서 잠정안 가운데 4가지 항목을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했다. Δ근로단축·휴업·휴직 시 노동계 협력 Δ휴업수당 감액신청 신속승인 제도 Δ특수고용직 고용보험 도입에 당사자 의견수렴 Δ경제사회노동위원회(민주노총 불참 중)에서 합의 이행·점검 조항이다.
특히 문제가 됐던 건 기업이 고용유지를 명목으로 근로단축과 휴직 등을 강요할 때 노조가 적극 협력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부분이었다. 다수 노조 관계자가 이 항목에 대한 불편을 드러냈다.
현행 법체계 아래서도 기업주들이 제도를 악용해 취약한 지위의 노동자들을 몰아내는데, 노조가 합의문에 서명하면 고용유지를 이유 삼아 노동자에게 휴업이나 휴직을 강요해도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정리해고제와 파견제가 비정규직과 취약계층 노동자들을 양산해 한국 노동자의 지위를 열악하게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견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결국 투표를 앞두고 계파 상당수가 돌아서 반대표를 던졌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집행부 사퇴 이후 내부 갈등 전면화 우려도
협 집행부 하에서 다시금 불거진 계파논란은 민주노총의 취약점으로 지목돼왔다. 대중운동 성향의 국민파가 대의원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대화보다는 투쟁’을 중시하는 중앙파와 현장파가 30%와 10% 정도를 구성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은 다수인 국민파 계열로 분류됐으나 비슷한 성향의 대의원 상당수에게도 일부 조항 합의를 끝내 설득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수차례 회의가 사실상 파행된 점은 치명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임시대의원회의를 앞두고 토론문과 질의문이 거의 올라오지 않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회의에서 대의원들의 참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도부가 대의원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고립되며 표결에서 패했다는 분석이다.
계파 외에도 산별 노조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특히 현 정부 아래서 무기계약직인 공무직 조합원이 대폭 늘어나며 반작용으로 공공부문 정규직 조합원들이 지도부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왔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한편 민주노총은 27일 사퇴한 집행부를 대신해 조직을 이끌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논의할 예정이다. 중앙집행위원회가 위촉하고 중앙위원회가 인준하는 비대위 구성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코로나19 국면으로 노동계 주요 이슈가 거듭 제기될 가능성이 높아 오는 12월로 예정된 차기 위원장 선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집행부 사퇴로 불거진 민주노총 내 갈등이 전면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