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보안법 시행 한달, '아시아 금융허브' 지위 유지할까?
2020.07.29 15:08
수정 : 2020.07.29 15:08기사원문
【베이징=정지우 특파원】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한 달 째 접어들면서 당초 예상대로 홍콩이 아시아 금융 허브를 상실하는 수순에 접어들었는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 제정 이후 미국 등 서방국가의 압박과 중국 정부의 강도 높은 법 시행이 맞물렸고 이 때문에 헥시트(기업·자본·주민의 홍콩 탈출)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특별지위 박탈...대체지역 찾는 中
29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지난 1일 홍콩 보안법이 시행된 후 중국은 곧바로 강도 높은 집행에 들어갔다.
다만 즉각적인 홍콩 탈출은 이뤄지지 않았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홍콩을 이탈해 제3국으로 기업이나 생활의 터전을 옮기겠다는 답변이 상당수 차지했지만 확인되는 사례는 드물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4일 홍콩 특별대우를 박탈하는 행정명령과 제재 법안에 서명한 후부터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홍콩 보안법 관여 중국 관리와 거래하는 은행을 제재하고 비자면제 혜택을 없애는 것 등의 조치는 홍콩에 진출한 자본이나 홍콩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미국, 영국 등 서방국가는 홍콩 탈출을 독려했다. 기업에겐 각종 인센티브 제공을 약속했고 이민·망명 형태로 홍콩인들에게 국경의 문도 열었다. 네이선 로 등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 상징적인 인물들의 망명이 잇따르며 헥시트의 시발점이 될지 이목을 끌기도 했다.
중국 정부 역시 법 시행 전후부터 홍콩 대체 지역 만들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우선 홍콩의 기능 중 무역과 쇼핑 부문을 하이난 자유무역항으로 흡수시키기 위한 전략에 들어갔다. 하이난의 면세 쇼핑 한도를 연간 3만 위안에서 10만 위안으로 상향했고 면세 대상 역시 기존 38종에서 45종으로 확대했다. 이 같은 정책 시행 첫 주 만에 하이난 방문객의 면세품 구입액은 4억5000만위안(약 775억원)까지 올라갔다.
중국 소식통은 “하이난 개발은 오래전부터 시작됐지만 최근 들어 속도를 높이고 있다”면서 “한국에게도 병원서비스 등과 같은 분야의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하이를 금융 중심지로 육성해 홍콩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중국에서 끊임없이 제기된다. 미중갈등과 홍콩 보안법으로 홍콩의 환경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만큼 중국 기업의 혁신, 기술적 발전, 국제적 경쟁력을 위해 상하이가 새로운 자본 집결지가 돼야 한다는 논리다. 다만 중국 정부의 과도한 자본 통제와 국제 비즈니스 혜택 부재 등은 걸림돌이다.
홍콩·광둥·마카오를 한데 묶은 ‘웨강아오 다완취’ 역시 홍콩 대체지 중 한 곳으로 거론된다. 홍콩과 마주 보고 있는 선전은 이미 2018년 홍콩의 경제 규모를 추월했다. 종합하면 중국 정부가 ‘홍콩의 영광’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다른 홍콩’으로 지위 유지
반면 홍콩의 아시아의 금융 허브 위상이 무너질 것이라는 관측은 섣부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 자본이 홍콩에서 이탈해도 중국 본토 자본이 빈자리를 메울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시장 정보 제공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홍콩 시장의 주식 발행 실적 427억 달러(약 51조원) 가운데 84%가 중국 본토 업체였다. 홍콩 증시 전체 시가총액 5조2000억 달러(약 6240조 원) 중에서도 중국 본토 업체 비중은 78%에 달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중국 본토와 서방국가를 연결하는 관문 역할이 여전히 필요하다”면서 “홍콩의 몰락보다는 또 다른 홍콩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과 싱가포르, 한국 등 상당수 국가가 탈홍콩 기업에게 당근을 제시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대규모 홍콩 이탈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국은 리쇼어링(본국 회귀) 기업에게 이주비용까지 제공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오히려 홍콩 상황에 적응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모건스탠리 등 미국계 투자은행(IB)들은 중국본토 합작증권사의 보유지분을 잇달아 확대하고 있다. 중국 증권감독당국으로부터는 ‘50% 이상’ 지분을 승인받은 상태다. 영국계 금융기관인 HSBC, 스탠다드차타드는 홍콩 보안법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성명까지 내놨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