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안 주고 잠수타면 끝".. 유명무실한 감치 제도
2020.07.30 15:15
수정 : 2020.07.30 15:15기사원문
양육비 미지급자들에 대한 감치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다시금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양육비를 고의로 외면해 감치 명령을 받은 ‘배드파더’를 전 부인이 잡았음에도 경찰 실수로 풀려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경찰의 안일한 대처와 제도의 한계가 빚어낸 촌극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 시민단체,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청장 고발
시민단체 양육비해결모임은 30일 김창룡 경찰청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경찰들이 감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다는 취지다. 법원은 가사소송법에 따라 양육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는 이혼 배우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를 주지 않을 경우 구치소나 유치장에 최대 30일 가두는 ‘감치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부산 동부경찰서에서는 이모씨가 잠복 끝에 붙잡은 전 남편 A씨를 경찰이 실수로 풀어주는 일이 있었다. 이씨는 “그 때의 허탈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며 “나라 잘못으로 인해 왜 내가 이렇게 발로 뛰어다니며 전 남편을 잡으러 다녀야 하나”라고 호소했다.
강민서 양해모 대표는 “감치는 양육비 이행을 위한 강제수단 중 (그나마) 가장 강한 수준의 제재”라며 “감치를 제대로 집행할 수 있도록 경찰이 감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발을 담당한 이준영 변호사는 “실수로 A씨를 보낸 경찰관도 누군가의 가족인 데다 해당 경찰관이 징계를 받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한 개인이 아닌 경찰 시스템과 감치 제도의 문제라고 판단해 경찰청장을 고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6개월 잠수타면 그만.. 한부모 73% “양육비 지급 못 받아”
법원은 이혼한 배우자의 양육비 지급 의무를 강화하기 위해 양육비를 제 때 지급하지 않은 자에게 내리는 감치명령의 집행 기간을 지난해부터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했다. 하지만 이 기간 내 당사자를 찾지 못하면 감치결정 자체가 무효가 돼 이행명령 재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게다가 당사자 행적을 찾지 못하면 그 사이 아무런 법적 조치를 할 수 없어 양육비 미지급분은 쌓여가고 아이들은 커간다.
그러다 보니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양육자가 많은 실정이다. 여성가족부가 2018년 양육비 채권자인 한부모(혼자서 아이를 양육하는 일방 부모) 20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그 실태를 알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혼자 자녀를 양육하는 한부모 1491명(73.1%)이 양육비 지급 의무자로부터 양육비를 전혀 지급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양육비를 지급받은 한부모 중에서도 90명(4.4%)은 부정기적으로 받았다고 했고, 116명(5.7%)은 과거에 받았지만 최근에는 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양육비를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고 응답한 한부모는 310명(15.2%)에 그쳤다.
최근 법원의 감치명령을 받고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에 대해 지방경찰청장이 운전면허 정지 처분을 할 수 있는 내용의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이것 또한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