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이체하면 깎아줄게요"… 은밀한 탈세, 막을 방법이 없다

      2020.08.03 17:31   수정 : 2020.08.03 17:32기사원문
"여기로 입금해주시면 천원 깎아드립니다."

서울 종로구 한 액세서리 가게. 1만원짜리 팔찌를 사기 위해 신용카드를 내밀자 업주가 계산대 앞에 놓인 종이를 가리켰다. 종이에는 개인 명의로 된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다.

카드결제 대신 현금이체를 할 경우 1000원을 깎아주겠다는 것이다. 업주는 현금영수증이 되느냐는 물음에 "그러면 깎아줄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간편송금 서비스, 탈세로 이용


3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페이나 토스(TOSS) 등 계좌이체·송금앱을 이용한 자영업자들의 소규모 탈세가 늘고 있다. 매출 규모가 드러나는 신용카드 결제 대신 개인이나 가족 명의로 된 계좌로 돈을 받아 소득을 누락하는 수법이다.

이는 최근 소비자들이 현금을 소지하지 않고 스마트폰뱅킹에 익숙하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전자지급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2019년 간편송금 서비스는 하루 평균 이용금액이 2346억원, 이용건수는 249만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각각 124.4%, 76.7% 증가했다. 이용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49.5%, 30대의 44.3%가 간편송금 서비스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20~30대 2명 중 1명은 간편송금을 이용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를 악용하는 자영업자의 행태다. 특히 지하상가나 노점상 등 매장에선 계좌이체로 결제를 유도하는 자영업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단순히 계좌이체를 요구한다고 해서 탈세 꼬리표를 붙일 수는 없다. 다만 계좌번호 명의가 개인으로 돼있거나 현금영수증을 거부한다면 의혹은 짙어진다.

실제로 지난 1~2일 서울 종로·용산구 일대 액세서리, 의류, 분식, 마스크 등 업종의 자영업자를 확인한 결과 신용카드 대신 계좌이체를 유도하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계좌번호는 상호나 법인이 아닌 개인명의로 돼 있었고, 현금영수증 요청은 대부분 거부했다.

이와 관련, 한 노점상 관계자는 "손님들도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다 보니 계좌이체 방식을 선호한다"며 "계좌이체를 해서 가격도 깎아주면 서로 좋은 일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계좌번호의 명의가 개인 명의로 돼 있는 것에 대해선 "편의상 이렇게 한 거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소비자는 이미 해당 방식에 익숙해져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아 보였다. 노점 앞에서 만난 30대 소비자 신모씨는 "지갑을 아예 들고 다니지 않아서 계좌이체 방식이 편하다"며 "신용카드로 계산하려 해봐야 계좌로 이체해달라는 경우가 많다. 계좌이체를 하면 서비스를 주거나 금액을 깎아주는 경우도 많더라"고 말했다.

광범위한 탈세…"단속 어려워"


국세청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세금탈루가 발각될 시 해당 금액을 몰수하고 가산세가 부과된다. 정도에 따라선 검찰에 고발될 수도 있다. 자영업자는 10만원 이상인 현금거래에 대해 소비자의 요구가 없더라도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사실이 적발되면 영수금액(부가가치세 포함)의 50%가 과태료로 부과된다.

카드결제 및 현금영수증 거부도 엄연한 불법이다. 국세청은 카드결제 거부 사실을 확인하면 해당 업체에 경고조치를 내리고 결제 거부금액의 5%를 가산세로 부과한다. 같은 업체가 2회 이상 적발될 경우 가산세 5%에 과태료 20%를 추가 부과한다. 여신전문금융업법 19조에 따라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국세청에 조사에 따르면 2017년 현금영수증 미발행 신고건수는 8180건으로 2012년(2501건)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다.

과세당국은 영세상인 사이에서 횡행하는 탈세에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탈세가 워낙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금액도 크지 않다보니 관리·감시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관련부처의 한 관계자는 "영세상인의 탈세까지 잡을 만큼 정부 여력이 없는 데다 이를 모두 잡으면 거의 모든 국민이 구치소 신세를 지게 될 것"이라며 "정도에 따라서 검찰 고발까지 가능하지만 아주 심각한 규모가 아니고서야 모두 단속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업주 계좌에 현금을 입금 받은 흔적이 남아도 지인이라고 주장하면 탈세를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영세업자의 탈세를 잡겠다고 계좌내역을 요구할 만큼 과세당국이 여유롭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불법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단속해야겠지만 마땅한 대책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