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제보·피해자 압박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이번엔 폐지될까

      2020.08.04 15:40   수정 : 2020.08.04 15:4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내용이 사실일지라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현행 형법을 두고 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른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공익제보자나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서 관련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는 가운데 각계에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데 뜻을 모으고 있다.




■공익제보자·소비자 압박 수단으로 쓰이기도
4일 국회에 따르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및 완화와 관련한 논의가 국회 안팎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한 차례 열린 공청회가 뜨거운 관심을 받은 가운데 2차 공청회도 예고된 상태다.
관련 법안도 이르면 9월 중 발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형법 307조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해 사실을 말한 자도 명예를 훼손하기만 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기업의 부정을 외부에 알린 공익제보자나 노동조합, 특정 단체나 개인의 문제점을 공표한 시민단체와 소비자 등이 처벌받게 된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는 A씨는 지난해 다니던 회사로부터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다.

고의로 규정에 미달한 제품을 생산하는 사실을 원청 품질관리팀에 제보했다는 게 이유였다. A씨는 명예훼손이 아닌 공익제보라고 항변했지만 회사는 그가 몇몇 사람에게 내용을 알렸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 A씨는 “어떻게 사실을 알려 피해를 바로잡았는데도 도리어 고소를 당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A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7년 서울 한 치과에서 치료를 받은 B씨는 최근 병원과 법적다툼을 준비 중이다. 병원이 B씨가 명예를 훼손했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냈기 때문이다.

B씨가 ‘병원이 자신의 동의 없이 치아 8개를 갈아버렸다’며 온라인 카페에 글을 올린 게 문제였다. B씨는 “글 내용이 모두 사실인데도 병원 이름을 알 수 있게 썼다며 법적 조치를 취했다”며 “피해를 본 건 나인데도 도리어 병원에서 고소하니 난감하다”고 답답해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는 국제적 흐름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건 국제적 기준과도 어긋난다. UN(국제연합(도 해당 조항이 유지되는 국가에 대해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한국도 이미 수차례 관련 권고를 받은 바 있다. 2011년엔 UN 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이, 2015년엔 UN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처벌하는 규정이 아예 없거나 내용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처벌하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공표한 내용이 사실일지라도 공표자를 처벌하고 공개를 막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형법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다스리는 현 상황은 시민단체나 공익제보자 등의 활동을 위축시켜 공공의 이익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

허진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은 “시민사회단체 같은 경우도 사실을 이야기해도 위법성 조각사유인 공공의 이익이 인정되지 않으면 처벌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처벌조항이 형법에 남아있으면 실제 고소해서 인정이 안 되더라도 말을 못하도록 고소하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개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두고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실이더라도 사생활에 대한 내용은 처벌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부터 처벌수위에서 징역형을 없애자는 내용, 형법에선 완전 삭제하고 민법으로 다루도록 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다.

당초 법안 발의를 예고한 이수진 의원실은 이달 중 한 차례 공청회를 더 열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발의할 법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의원실 관계자는 “처음 안에서 절충하고 보완할 부분이 있어 법안을 다시 봐야하는 상황”이라며 “통일된 방향으로 결론이 난 게 아니라서 2차 공청회를 8월 중에는 하려고 목표하고 있지만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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