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계급'의 분노, '샤이 트럼프'의 컴백… 美 대선 판 흔든다

      2020.09.13 17:38   수정 : 2020.09.13 18:12기사원문
"나는 정말 신께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보내셨다고 생각한다. 진짜다."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러트로브의 공화당 유세 현장에서 자신을 에드워드 영이라고 소개한 트럼프 지지자는 지역 KDKA방송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믿음이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유세장 부근에는 트럼
프가 도착하기 몇 시간 전부터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생겼고 전국에 걸쳐 유세를 따라다니는 지지자도 많았다. 트럼프는 첫 임기 동안 수많은 스캔들과 논란을 겪고 탄핵 위기에도 몰렸지만, 아직도 수많은 지지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버려진 계급의 분노


미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가 7월 27일~8월 2일 벌인 여론조사에 의하면 백인 유권자의 54%가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백인 중에서도 최종 학력이 고등학교 이하인 유권자의 64%가 트럼프를 택했다. 연령별로 인종과 학력을 불문하고 50대 이상 유권자의 51% 이상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미 농업전문지 캐피털프레스에 의하면 지난해 10월 조사 결과 트럼프의 국정 지지율은 도시(34%)보다 시골 지역(56%)에서 압도적으로 높았다. 미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러한 결과를 종합해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이 '시골에 거주하고 교육수준이 높지 않은, 중장년의 백인 노동자 계층'이라고 분석했다.

미 우파 정치평론가 마이클 린드는 올해 1월 발표한 자신의 저서 '신 계급전쟁'에서 트럼프에 대한 찬반이 사실상 백인 노동자 계급과 신자유주의 특권층의 대결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종료 이후 1970년대까지 정부와 기업, 거대 노조를 이룬 노동자를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대학가에서 쏟아진 기술관료와 엘리트 계층이 노동자의 자리를 빼앗았다고 주장했다. 책에 의하면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특권층은 백인들의 문화를 하위문화로 폄하하고 다문화주의를 강요했으며, 반대 목소리에 '혐오'라는 낙인을 찍어 백인 노동자를 2등 시민으로 깎아내렸다.

지역갈등도 계급 투쟁에 한몫했다. 미 정치평론가 래리 워맥은 지난해 11월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낸 기고문에서 미국의 경제발전이 도시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낙후된 시골 주민들의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시골에 사는 백인들은 도시 엘리트와 흑인,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가져갈수록 자신들의 삶이 나빠진다고 본다.

워맥은 시골 백인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그가 도시 엘리트들과 싸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골 백인들이 어차피 워싱턴 정가와 언론 전부가 부패했다고 보기 때문에 트럼프의 각종 논란을 특별히 문제 삼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내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는 버려진 계급에 단순한 구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경제 공약과 실망감


물론 다른 계층과 인종 사이에도 트럼프 지지자가 존재한다.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미 주간지 뉴요커의 애번 오스노스 기자는 지난달 공영 NPR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에서 트럼프 지지자를 찾았다고 말했다. 그리니치는 미국에서 손꼽는 부촌이자 정·재계 엘리트들이 다수 모여 사는 곳이다. 오스노스는 그리니치 엘리트들이 트럼프의 감세 공약과 산업 규제 철폐를 반긴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지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전에서 경제 외에 인종 문제나 기타 사회적 갈등을 논의하기 매우 꺼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 주민들이 사회적 엘리트로서 겉으로 인종 문제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미국 사회의 다문화 확산을 우려하고 이민자들이 기존 미국 사회에 동화되길 원한다고 주장했다. 오스노스는 트럼프가 인종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교묘히 피해가는 화법을 구사한다며 부유한 엘리트들도 이러한 접근방식을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소수의 흑인들도 트럼프을 지지한다. 조지아주 주의회의 버논 존스 하원의원은 흑인 민주당원이지만 지난달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같은 달 CNN에 보낸 기고문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와 그의 러닝메이트인 커멀라 해리스가 공직생활 중에 흑인에게 불리한 사법 개혁을 방관했다고 주장했다. 존스는 단순히 흑인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좌파 진영을 뽑아야 한다는 논리는 정치적인 세뇌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안정과 질서를 중시하는 무당파 지지자들은 최근 흑인 인종차별 시위와 관련해 질서 수호를 강조한 트럼프 진영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크다.

돌아온 '샤이 트럼프'


트럼프의 지지율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바이든에게 밀렸지만 선거(11월 3일)를 약 2개월 앞두고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미 선거통계 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트럼프의 전국단위 평균 지지율은 지난 6월 중순에 40.9%로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보다 10.2%포인트 낮았으나 이달 10일에는 그 차이가 7.5%포인트로 줄었다. 트럼프는 전날 노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같은 일부 경합주 지지도 조사에서 2~3% 차이로 바이든을 바짝 추격했다.

여기에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트럼프 지지를 감추는 '샤이 트럼프'를 고려해야 한다. 과거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백악관 산하 관리예산실 공보국장을 지냈던 J T 영은 2일 정치매체 더힐에 낸 기고문에서 좌파와 언론이 트럼프 지지자를 악당으로 표현하면서 샤이 트럼프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8일 미 시장조사기관 클라우드리서치가 2000명의 유권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지지 후보를 감춘다고 답한 응답자는 11.7%에 달했다. 민주당 지지자(5.4%)와 무당파(10.5%) 응답자에 비해 뚜렷하게 높다.

특히 트럼프 지지층의 10.1%는 선호 후보를 묻는 전화 조사에 거짓말한다고 답했는데 이는 바이든 지지층의 거짓말 비율(5.1%)의 2배 가까운 수치다.
영은 이러한 수치를 참작했을 때 전체 유권자의 약 3%가 샤이 트럼프라고 주장했다. 그는 작은 차이이긴 하지만 2016년 대선 당시 선거 전날 트럼프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지지율이 각각 45.3%, 47%로 1.7%포인트 차이였다고 지적했다.
영은 이번 선거 또한 박빙일 가능성이 큰 만큼 3%의 샤이 트럼프가 당락을 가를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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