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 공용화와 영업의 자유

      2020.09.14 18:02   수정 : 2020.09.14 18:02기사원문
지난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소주는 푸른빛이 도는 병이나 투명한 병에 담긴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다 1994년 녹색병의 '그린소주'(두산경월)가 인기를 끌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경쟁사들이 앞다퉈 녹색병에 소주를 담아서 내놨고, 지금은 '소주=녹색병'으로 통하는 시대가 됐다.



이후 업계에서 '소주병을 함께 쓰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빈병 회수와 재사용을 촉진함으로써 자원을 절약하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출고량을 기준으로 78%가 2009년에 맺은 자율협약에 동참했다. 나머지 22%는 일부는 설비 교체비용, 브랜드 가치 하락 등을 이유로 색깔이 다른 이형병을 계속 쓰기로 했다.

10여년이 흐른 지금 소주병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하이트진로가 지난해 4월 출시한 '진로이즈백'이 소위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녹색병이 아닌, 푸른빛의 이형병(진로이즈백)을 선별해 회수하는 비용이 늘어나자 경쟁사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가 이형병 처리에 관한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소주업계는 올해 7월 녹색병이든, 이형병이든 일대일로 먼저 맞교환한 다음 추가로 공병을 받아야 할 경우 병당 17.2원의 수수료를 주기로 합의했다.

합의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환경단체가 태클을 걸고 나섰다. 소주병의 색과 모양이 제각각이면 빈병 재활용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급기야 '소주병 공용화 사용' 법제화까지 들고 나왔다.

과연 그럴까. 진로의 이형병은 올 들어 판매가 급증한 1월을 제외하고는 2~6월 평균 회수율 약 96%, 재사용률 83%를 기록했다. 전체 공병 회수율(95%) 및 재사용률(85%)과 견줘 별반 차이가 없다. 이미 빈병 재활용에 대한 기업의 의지가 강하고, 국민적 인식이 높아진 덕택이다.

이런 마당에 자원절약, 환경보호를 빌미로 모든 병을 공용화하자고 할 것인지 환경단체에 되묻고 싶다. 맥주, 양주, 와인을 비롯해 다른 음료나 소스 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면서 왜 유독 소주에만 용기(병) 공용화를 강력하게 주장하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기업은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제품을 개발·생산해 매출을 올린다. 새로운 제품은 종전 제품과 차별화가 생명이다. 제품의 기능(맛)은 물론 필요한 경우 포장을 바꿔서라도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아야 한다. 진로이즈백이 인기를 모은 이유도 오래전에 나온 진로의 맛과 포장(병)을 재해석한 덕분에 레트로(복고풍)에 열광하는 MZ세대와 과거의 추억을 소환한 기성세대까지 잡을 수 있었다.

모든 소주에 한 가지 병만 사용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이는 기업활동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것으로,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 이런 규제를 받지 않고, 빈병 재사용도 하지 않는 수입주류와 비교해 역차별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실제로 제주를 대표하는 소주 '한라산'은 예나 지금이나 투명한 병을 사용하고 있고, 보해양조와 무학도 각각 2014년과 2018년에 녹색병이 아니라 투명한 병에 담긴 소주를 내놓은 바 있다.

빈병 재활용의 핵심은 이형병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공용화병이든, 이형병이든 간에 회수율을 높이고 재사용을 늘리는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이 아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생활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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