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S투자자문 '200억' 폰지사기…대표 계좌로 돈 빼돌려
2020.09.16 06:05
수정 : 2020.09.16 09:32기사원문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고수익을 미끼로 한 GRS투자자문(이하 GRS)의 폰지사기 정황이 포착됐다. 현재까지 투자자 300여명이 GRS의 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20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못 돌려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폰지사기는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다단계 금융사기를 말한다.
GRS의 강모(46) 대표이사는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돈을 수차례에 걸쳐 자신의 개인 계좌로 빼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강 대표는 또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나를 고소하면 투자금 돌려받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사실상 수사 무마를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300여명 투자금 약 200억원 발 묶여, 1인당 2000만~8억원 투자
16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4월 투자자 172명은 H법무법인을 통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등의 혐의로 GRS의 강 대표를 비롯해 김모A·김모B 전 공동대표, LLC파트너스(이하 LLC, LLC는 유한책임회사를 뜻한다)의 김모 대표 등 15명을 고소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GRS는 지난 2017년 10월18일부터 2020년 3월30일까지 368차례에 걸쳐 73억3795만9542원을 편취했다. 여기에 투자자 등 사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후 추가 고소가 이뤄졌고 피해를 본 투자자는 300여명까지 늘어났다. GRS에 발이 묶인 투자금의 규모는 2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1인당 적게는 2000만원에서 많게는 8억원까지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GRS은 재무설계사들을 통하거나 대형 포털사이트 카페 등에 투자 수익을 인증하는 재테크 관련 글을 게시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GRS는 13개의 금융상품을 내걸고 영업을 했는데, 투자기간은 2~3년, 연 수익률은 5~14%의 고수익을 보장했다. 각 상품의 최소 가입금액은 1000만~3000만원이었다. 또 이들 상품의 투자 대상은 베트남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공기업·지자체 소유 부동산 개발사업, 저평가된 기업의 유상증자 자금 및 전환사채(CB) 매입 등으로 다양했다. GRS는 투자금의 2%를 수수료로 먼저 받았다.
캐피탈 대출 재원에 대한 대여금과 주식·선물·옵션에 투자하는 상품의 경우 3년 합계 26% 이상의 수익률도 달성할 수 있다고 보장하기도 했다.
GRS는 이 과정에서 "투자금 유치회사의 법인형태가 유한책임회사로 설립됐고, 투자자들의 투자금이 해당 유한책임회사의 출자금으로 구성돼 금액 비율에 따라 지분이 취득되기 때문에 만기시 또는 사원탈퇴시 투자금의 반환이 안정적"이라며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GRS는 한 투자안내서에서 손실 가능성에 대해 "담보물건이 있기에 대출금 미회수시에도 원금과 이자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대표 개인 계좌로 투자금 빼돌려, 애초 돌려막기 목적 투자 유치
GRS의 폰지사기 정황이 처음 포착된 것은 올해 3월쯤이다. 2월이 만기인 투자금 중 약 15억원이 미지급된 점을 의아하게 여긴 일부 재무설계사들이 GRS를 찾아가 당초 투자금이 투입됐어야 할 LLC들 중 한 계좌를 확인한 결과 잔액이 0원이었다. GRS는 LLC가 투자금을 받아 투자를 집행하는 회사라고 설명했었는데, 거짓이 탄로난 것이다.
강 대표는 올해 4월 공청회에서 김모A·김모B 전 공동대표로부터 GRS를 인수한 뒤 2017년 1월 대표로 취임했을 때 회사에 200억원이 넘는 부채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이를 갚거나 본인 임의로 다른 투자처에 투자하는데 투자금을 썼다고 밝혔다. 횡령을 인정한 셈이다. 200억원이 넘는 빚은 기존 투자자들에 대한 원금과 수익금 반환분이었다고 한다. 결국 신규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투자금을 기존 투자자들에게 돌려막기식으로 지급한 것이다.
뉴스1이 입수한 한 LLC의 통장을 보면, 강 대표는 2018~2019년 수십 차례에 걸쳐 하루에 적게는 30만원에서 많게는 5억6000만원까지 자신의 계좌로 투자금을 이체했다. 또 대부분 LLC의 자본금 규모는 설립 당시 100만~300만원이었는데 투자자들의 출자금 교부에도 자본금은 증액되지 않았다고 한다. 즉, 13가지 금융투자상품은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모으기 위한 그럴싸한 창구 역할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투자자들은 "강 대표 등을 정점으로 한 조직적인 사기범죄"라면서 "투자안내서상 투자대상에 투자된 것이 아니라, 기존 투자자들에 대한 원금과 수익금을 지급하는 데에 사용됐을 것"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일각에서는 GRS에 해외 부동산, 유상증자 자금 대여·전환사채 매입 등 투자 대상을 선별·기획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없었다는 지적도 제기되는 상황이라, 처음부터 폰지사기를 저지르기 위해 투자자들을 유인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2016년 7월 금성테크(비엔씨컴퍼니의 전신)는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GRS를 대상으로 3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으나, 이듬해 4월 비엔씨컴퍼니는 감사의견 한정 사유로 상장폐지됐다.
한 변호사는 "1대 공동대표 때는 아마 돈을 좀 벌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김 대표는 엑시트(exit·탈출)를 위한 마지막 바지사장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GRS 전·현직 대표들, 혐의 인정…수사 무마·유사수신행위도 주목
경찰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 GRS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해 강 대표 및 LLC 계좌를 확보하고 자금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 또 경찰은 강 대표를 비롯해 김모A·김모B 전 공동대표 등 피고소인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하고 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GRS의 불법 행위에 대한 조사 내용을 경찰에 참고자료로 넘겼다.
현재까지 경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핵심 피의자는 강 대표와 김모A·김모B 전 공동대표 등 3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경찰조사를 받은 한 LLC 대표는 뉴스1에 "제가 LLC를 만들거나 운영한 게 아니다. 대표로 명의만 돼 있던 것"이라면서 "실질적으로는 강 대표가 만들고 운영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강 대표와 김모A·김모B 전 공동대표 등은 모두 사기 및 횡령 등의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서로 네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강 대표는 김모A·김모B 전 공동대표와의 공모 가능성을 제기하는 투자자들에게 '향후 김모A 전 공동대표로부터 일정 규모의 자금을 받기로 해 이들을 고소하지 않은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하기도 했다.
경찰의 막바지 수사 또는 검찰의 보강 수사 단계에서 이들의 혐의가 더욱 짙어지면 구속영장이 신청·청구될 가능성이 있다.
경찰은 강 대표의 수사 무마 의혹도 들여다볼 수 있다. 강 대표는 4월 투자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여러분들이 불안감에 혹은 근거 없는 추측으로 뭔가의 법적행위를 하시는 것은 실제 고객님들의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동을 하시겠다면 하시라.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라며 "문제를 키우는 순간, 제가 경제활동을 못하는 순간, 고객분들의 피해는 확정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아울러 GRS는 투자자문·투자일임업만 등록했을 뿐 정작 금융투자상품 판매를 위한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지 않은 만큼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뉴스1은 폰지사기 혐의 등을 물어보기 위해 강 대표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연락은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