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조 '공짜노동' 분류작업 손뗀다…"업무과중에도 대책없어"

      2020.09.17 14:08   수정 : 2020.09.17 16:40기사원문
택배노동자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택배노동자 분류작업 전면거부 돌입,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9.17/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추석을 앞둔 17일 대전 중부권광역우편물류센터에서 직원들이 밤사이 전국에서 들어온 택배 상자를 분류하고 있다. (충청지방우정청 제공) 2020.9.17/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최동현 기자 = 전국의 택배노동자 5만여명 중 약 4000명이 분류작업에서 손을 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돼 비대면 거래가 늘었고 추석도 다가오면서 물류량이 폭증돼 인력충원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대책위)는 1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화견을 열고 전국택배연대노조 조합원을 포함해 4000여명의 택배 노동자들이 오는 21일부터 분류작업을 전면 거부에 나선다고 밝혔다.

분류작업은 배송작업 전 물류터미널에서 배송해야 할 물품들을 담당자가 맡은 구역별로 세분화하는 작업이다. 택배물품이 실린 차량이 터미널에 물품을 내려놓으면 택배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한 뒤 자차에 실어 배송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동안 대책위는 택배노동자들이 전체 근무시간 중 절반을 배송될 물건을 분류하는 작업에 동원되고 있음에도 정당한 임금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며 '공짜노동'이라고 비판해왔다.


택배노동자들은 배송을 통해 건당 수수료를 받는 데 배송 전 물품 분류작업에 투입되는 시간에 대해서는 임금을 적용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책위는 택배노동자들이 하루 13~16시간씩 일을 하는데 그중 절반을 분류작업에 투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책위가 최근 택배노동자 821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자들의 평균 주간 노동시간은 71.3시간으로 법정근로시간 52시간을 큰 폭으로 상회했으며 과로로 인한 질병 발생 시 산업재해로 인정되는 60시간도 훌쩍 뛰어넘었다.

실태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평균적으로 전체 근무시간의 42.8%를 분류작업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과중한 업무로 응답자의 25.6%는 점심식사를 할 시간도 없다고 밝혔고 점심을 먹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평균적으로 10~20분 정도의 시간을 쓰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대책위는 코로나19 확산 등의 영향으로 물류량이 증가함에 따라 분류작업과 배송을 함께 해야 하는 택배노동자들의 업무량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대책위는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7명의 노동자가 과로로 인해 사망했다며 더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인력 충원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택배노동자들이 과도한 격무에 시달린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정부가 나서서 택배업무 종사자에 대한 안전조치를 마련할 것을 택배사들에 권고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4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택배노동자들의 과로 문제에 대해 임시인력 증원 등 선제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대책위는 정부의 권고와 대통령의 지시에도 택배사들이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대책위는 정부의 권고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우정사업본부(우체국)의 경우에도 관련 대책 마련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석운 대책위 공동대표는 "근본적인 제도적 개선과 노사정, 시민사회 간의 협의를 통해 문명적 방법으로 해결해 가자고 제안을 했다"라며 "(하지만) 당장 추석 특송기간만이라도 임시적 분류인원을 투입해 과로사 참사를 막고 제도적 합리적 해결책을 모색하자고 이야기했는데 안타깝다"고 밝혔다.

다만, 택배사들은 대책위와는 조금 다른 입장이다. 한 택배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택배기사나 터미널(분류) 인력을 계속해 충원해왔고 이번 추석 특수기간은 전년 대비 물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인력충원을 위해 계속해 노력해왔다는 것이다.

또 다른 택배업체 관계자는 분류작업을 하는 물류터미널 현장이 대부분 자동화됐다며 "대형 물차에서 싣고가서 지역터미널에 내려준 물품의 상하차는 아르바이트생들이 한다"라며 자동화기기를 통해 분류된 물품을 택배기사들이 가져가는 것이지 분류작업 전체를 택배기사들이 일일이 손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최근에는 기계가 물품 바코드를 읽어 택배기사에게 보내주는 시스템도 도입이 됐다며 "5명분까지 분류를 해주기 때문에 기사들은 5개 중 자기 것을 골라내면 된다"고 설명했다. 물량이 많아지는 것은 많지만 회사도 노동자들을 업무량 감소를 위해 노력했다는 주장이다.

한편, 대책위는 전국의 4358명의 택배노동자를 대상으로 분류작업 전면거부 투표를 진행했으며 그중 4160명(95.5%)이 거부에 동의했다. 투표에는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소속 조합원 외에도 500여명의 비조합원이 참여했다.


투표 결과에 따라 택배노조는 오는 21일부터 택배 분류작업을 무기한 중단할 예정이다. 대상이 되는 택배회사는 롯데택배·한진택배·CJ대한통운·우체국 등이다.
전국의 택배노동자 5만여명 가운데 10%에 가까운 택배노조 4000여명이 분류작업을 거부하면서 배송작업에 장애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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