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물밑 한일 외교' 타진..킹 메이커 최근 방한
2020.09.20 14:01
수정 : 2020.09.20 23:43기사원문
아베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양국 관계 돌파구를 찾기 위한 스가 정권의 물밑 움직임이 조심스럽게 시작된 셈이다.
일본 총리와 총리관저, 외무성, 자민당 등으로 일정 부분 역할 분담도 예상된다. 외교를 장기로 삼아 관저 주도 외교를 펼쳤던 아베 시대에 비해, 스가 시대에는 '외교 플레이어들'이 한층 다양해지고 복잡해질 것이란 관측된다. 한·일 관계를 풀어갈 키맨들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진 것이다. 이들이 '아베 노선의 변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 日정계 막후 실력자 방한
20일 일본 정가의 한 소식통은 "일본의 원로 정치인 가메이 시즈카 전 의원(전 금융상, 전 건설상)이 지난 달 초 서울을 방문해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정의용 전 안보실장 등 전현직 안보실장과 잇따라 회동했다"고 밝혔다.
가메이 전 의원은 한·일 관계가 경색되거나 북·일 관계 돌파구를 모색할 때마다 서울과 평양을 방문했다. 징용 배상 판결에 이어 초계기 갈등으로 한·일 관계에 긴장이 고조된 지난해 3월에도 서울 방문 뒤 아베 총리 관저로 직행했었다.
가메이 전 의원은 일본 정계의 막후 정치의 실력자이면서 킹메이커다. 스가 총리 만들기에 가장 먼저 나선 니카이파의 전신이 가메이파다. 81세인 니카이 간사장과는 두 살 터울 밖에 되지 않으나, 니카이 간사장 조차 가메이 전 의원에게 깍듯이 예우한다고 한다. 또 다른 소식통은 "스가 총리 조차 카메이 전 의원에 대해서는 그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정도로 막후 실력자"라고 말했다.
게다가 사실상 특사이자 아베 총리의 외교 멘토 중 한 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당시 문희상 국회의장이 도쿄를 방문했을 때에도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 옆에 배석했던 인물이 가메이 전 의원이다. '가메이-니카이-스가'로 이어지는 일종의 원로그룹이 외교 플레이어의 한 축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다. 가메이 전 의원은 본래 경찰 출신이다. 경찰 출신인 일본 국가안전보장국(NSS)의 기타무라 시게루 국장에게도 적지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기타무라 국장은 서훈 국가안보실장의 카운터파트너다
이 소식통은 "북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시각, 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 두루 얘기를 들어본 것으로 안다"고 했다.
'아베·스가 정권 교체기'에 1년 10개월 남은 문재인 정권의 향후 대북정책, 대일 정책에 대한 탐색전이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 친한파' 니카이 특사 가능성 주목
아베 전 총리는 제2차 내각 출범(2012년 12월 26일)후 채 열흘도 안된 2013년 1월 4일 재무상을 지낸 누카가 후쿠시로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을 특사로 파견했었다. 대통령제인 한국과 달리, 일본은 총리 취임 직후 주변국에 매번 특사를 파견하지는 않으나, 스가 총리 역시 주변국에 특사를 파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실제, 최근 자민당에서 '친한파'로 분류되는 니카이 간사장이 주변에 한국 방문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니카이 특사설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니카이 간사장은 우파 성향이 강한 아베 전 총리의 사람들과 달리, 관계 개선을 향한 '균형점'을 만들만한 인물로 여겨진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박지원-니카이 라인'이 주목해야 할 라인 중 하나인 것이다.
이미 간사장에 유임된데다 고령(81세)인 점을 감안하면, 정치적 계산없이 움직일 수 있다. 한·일 관계에 정통한 한 인사는 반면 다른 관측을 내놨다. "만일 스가 총리가 니카이 간사장에게 한국에 다녀와 달라고 한다면 응하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방한으로 얻을 게 없다면 그가 먼저 스가 총리를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별도로 자민당 내에서는 한국의 차기 대권주자로 주목되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관계 강화를 위해 당 대표 취임 축하 사절단 파견 등을 검토하고 있다.
■'韓외교부-日외무성' 라인 부상
스가 총리는 알려진 것보다 사실 깊게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합의에 관여했었다. 한·일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졌을 당시, 한국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간에 위안부 문제에 관한 국장급 대화를 출범시켰던 것도, 이를 다시 고위급 대화로 격상시킨 것도 관방장관이었던 스가 총리와 당시 이병기 주일대사였다.
당시 그와 교분이 두터웠던 한 한국의 외교인사는 "아베 총리기 말 바꾸기를 했던 것과 달리, 스가 총리는 비교적 현실적인 면모가 강하고, 앞뒤가 맞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위안부 합의는 얼마 되지 않는 그의 외교경력에 대표적 실패작이 됐다. 스가 총리는 "미국을 (한·일 위안부 합의의)증인으로 내세웠지만, 그렇게 빨리 한국과의 관계가 나빠지게 될 지는 몰랐다"(주간문춘 10월호)로 토로한 바 있다.
스가 총리가 그럼에도 한·일 관계 개선에 직접 움직인다면 한·일 양자 관계 뿐만 아니라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 중국의 부상, 북한 위협 등을 종합적으로 놓고 판단한 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같이 가는 게 전략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움직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정중동 외교에 머물 것이다.
이런 판단을 뒷받침하기 위한 외무성의 역할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총리 취임 직전 일본 기자클럽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 입후보자 토론회(지난 12일)에서 한 질문자가 스가 당시 총재를 가리켜, "외교 수완은 미지수"고 평하자 그는 아베 총리처럼은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 나름의 외교자세가 있다. 외무상도 있고, 정부 전체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답했다.
'총리 관저 주도, 외무성 배제'를 특징으로 한 아베 시대와 달리, 스가 시대에는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외무성의 아키바 다케오 사무차관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아키바 차관은 스가 총리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정권 당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주도하는 등 대한 강경파로 분류되는 이마이 다카야 총리 보좌관, 하세가와 에이이치 총리 보좌관 등 경제산업성 출신 관저 관료들은 이미 물러났다.
다만, 스가 정권을 뒷받침할 인재의 폭이 좁고, 스가 내각이 1년 짜리 과도 내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은 외교 활동에 제약이 아닐 수 없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