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살' 첩보 10시간 후 文 보고·34시간 후 발표…"왜 늦었나"
2020.09.25 06:47
수정 : 2020.09.25 09:45기사원문
(서울=뉴스1) 유경선 기자,정윤미 기자 = 북한군이 월북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 어업지도원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불에 태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특히 야권을 중심으로 정부와 청와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가열될 조짐이다.
우리 공무원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어업지도 업무 중 실종된 당시에는 그렇다 쳐도, 총격 사살 및 시신 훼손 첩보가 입수된 뒤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되기까지 10시간이나 걸렸고, 이를 국민들에게 발표한 것은 첩보 입수 후 34시간이나 걸렸다는 게 주요 비판 지점이다.
25일 청와대와 국방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문 대통령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첫 서면보고를 받은 것은 지난 22일 오후 6시36분이다.
'서해 어업관리단 직원이 해상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해서 수색 중이고, 북측이 그 실종자를 해상에서 발견했다'는 내용의 첩보가 서면으로 보고됐다. 우리 군 당국이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 선박이 실종자를 발견한 정황을 입수한 지 약 3시간 만이다.
서면보고 4시간 뒤인 밤 10시30분쯤 청와대는 '북한이 월북 의사를 밝힌 실종자를 사살한 후 시신을 불태웠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후 23일 오전 1시부터 2시30분까지 청와대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서욱 국방부 장관 등이 참석한 회의가 열렸다. 우리 국민의 피살 첩보의 신빙성을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이어 23일 오전 8시30분부터 9시까지 서훈 실장과 노영민 실장이 새벽회의에서 정리된 첩보 내용을 문 대통령에게 대면보고했다. 첫 대면보고이자, 우리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살해됐다는 내용을 처음 보고받은 자리였다. 해당 첩보가 입수된 지 10시간만에 보고를 받은 셈이다.
문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 북에도 확인하라. 만약 첩보가 사실로 밝혀지면 국민이 분노할 일"이라며 "사실관계를 파악해서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려라"였다.
이에 청와대와 정부는 23일 오후 4시35분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북한에 우리 공무원의 피격 사망 등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을 요구하는 통지문을 보냈으나 북한은 답이 없었다. 그리고 이날 밤 10시50분 실종 공무원의 피격 사실을 전하는 첫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튿날인 24일 오전 8시 다시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국방부는 사건 분석결과를 보고했고, 오전 9시 서 실장과 노 실장은 문 대통령에게 분석결과를 보고했다. 두번째 대면보고다.
문 대통령은 이 첩보의 신빙성에 대해 다시 물었다. 두 실장은 "신빙성이 높다"고 답변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NSC 상임위를 소집해 정부 입장을 정리하라"라며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을 국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24일 오전 11시쯤 국방부에서 이번 사건을 공식 발표했다. 피격 사망 첩보가 입수된 뒤로 34시간가량 흐른 후였다.
문 대통령에 대한 보고가 늦었다는 지적에 대해 청와대는 "첩보의 신빙성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수준이 아주 낮은 첩보들을 모아서 분석하기 것이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완전한 보고서가 있어서 그것을 갖고 (관계장관들이 새벽에) 회의를 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새벽 1시부터 2시30분까지 관계장관 회의가 소집돼서 관련 정보에 대한 분석이 들어갔고 아침 8시30분에 보고를 드렸으니 짧은 시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첩보 입수 후 이틀 뒤에야 공식 발표가 이뤄진 데 대해서도 "정보의 신뢰성과 사실관계 파악에 대한 검증 과정에 시간이 소요됐다"며 "정부가 발표하는데 첩보만 갖고 발표할 순 없지 않느냐"라고 해명했다.
전날(2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이 같은 대통령 보고 지체와 공식 발표 지연 경위에 대한 집중 추궁이 이어졌다.
이에 서욱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이렇게 천인공노할 일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을 못 하고 정보를 분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여러 출처의 조각조각을 모아 정보화시키는 작업을 하는 과정 중에 (사건 경위가) 식별됐다. 정보가 정말 사실인지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23일 오전 1시26분부터 방송된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화상 연설에서의 '종전선언' 제안과도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청와대는 "이미 15일에 녹화해 18일에 유엔에 발송한 연설"이라며 관련성을 부인했다.
유엔연설이 방송 중일 때에는 해당 첩보의 신빙성을 분석하는 관계장관 회의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신빙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엔 연설을 수정하거나 하는 판단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야권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른바 '세월호 7시간' 공세를 거론하며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응을 비판하고 나섰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전날 논평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군에 총격을 당하고 시신까지 훼손된 사실이 드러났다"며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 사실을 끝까지 숨기려 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우리 국민의 실종과 사망시점까지 청와대가 상황을 인지하며 보고를 받았을 가능성이 큼에도 대통령 유엔연설 전까지 철저히 비공개에 부쳤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전날 국방위 긴급현안보고에서 "세월호 사건 때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며 박근혜 대통령을 공격했는데, 22일 밤 10시10분에 실종된 공무원이 피살되고 불태워진 것을 확인했는데 왜 이틀 동안 밝히지 않고 있었는가"라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이 사건은 실시간으로 브리핑을 해야 하는 사건으로 보이는데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어서 이틀간 공개하지 않고 있었는가"라며 "국방부는 적어도 사건이 발생한 뒤에 사살된 것으로 추정되고, 북한이 불에 태운 것으로 추정된다는 발표를 즉시 해줬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의 유엔 연설 때문에 이걸 공개하지 않고 은폐했다는 식으로 정쟁으로 가는 게 참 안타까운 우리 현실"이라며 "연설은 23일 새벽 1시26분부터 16분 동안 방송됐고, 15일 녹화해 18일에 유엔으로 이미 발송됐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