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달가운지 몰라"…70세 늦깎이 학생의 기쁨
2020.10.08 11:53
수정 : 2020.10.08 13:52기사원문
(광주=뉴스1) 정다움 기자 = "얼마나 달가운지 몰라."
칠순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574돌 한글날을 앞둔 8일 오전 광주 북구 우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난 이평자 할머니(70). '초등생 소녀'처럼 들뜬 모습이었다.
"올해 목표가 한글 배우기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배우질 못해서 걱정이 많았지. 한글 학교가 다시 문을 여니까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
이 할머니는 칠십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았다.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등록은 했지만 학교에 가는 날보다 밭으로 나가는 날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1년 남짓 학교에 다니다 그만둬야 했다.
"형편이 어렵기도 했고 '여자가 무슨 학교냐'며 허구한 날 일했지. 나이 들어서는 가족들 뒷바라지하다 보니 글을 배우지 못했고."
이 할머니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중퇴'. 배우지 못한 한과 설움은 평생 가슴에 남았다.
불편함도 컸다. 말을 하고 대화는 가능하지만 글자를 읽지 못하니 답답했다. 이 할머니는 '가나다라'도 읽지 못하는 완전 문맹이다.
"동사무소에서 서류 하나 떼려고 해도 글씨를 써야 하는데, 모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해야 하고. 불편한 건 말도 못하지."
이 할머니가 '글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건 지난해 말이다. 복지관에서 한글 교실을 연다고 해 등록했다.
올해 1월부터 한글교실에서 교육을 받았다. 한달 남짓 수업을 받으며 ㄱ,ㄴ,ㄷ,ㄹ부터 가,나,다,라까지 배웠다.
수업 도중에도 모르는 게 있으면 수시로 질문했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홀로 복지관 도서관에 남아 공책에 한글단어를 꾹꾹 눌러쓰며 복습했다.
이 할머니는 한국어교실 학생들 사이에서 '늦깎이 모범생'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한글 배우는 게 유일한 낙이었어.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단어를 배울까 설렐 정도였으니까."
신미영 우산종합사회복지관 팀장은 "문맹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한국어 교실에 등록하지 못하는 어르신들도 많은데 이평자 할머니는 자발적으로 한국어 교실에 등록했다"며 "수업 중에도 부끄러워하는 것 없이 모르는 것들을 질문한다.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높은 우수 학생이다"고 말했다.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코로나19로 한글교실을 중단한다는 소식이었다.
광주에서는 지난 2월23일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지역감염 확산 예방을 위해 복지관이 문을 닫았고 한글교실도 운영이 중단됐다.
금방 문을 열 것 같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장기화했고 복지관 문도 꽁꽁 닫혔다.
"나처럼 배움에 대한 한이 맺힌 사람들은 한국어 교실 시간이 한을 풀어주는 힐림 시간과 같아.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배우질 못하니 얼마나 허망했겠어."
복지관이 문을 닫은 지 8개월. 최근 광주지역 코로나19 상황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지난 6일 복지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한글교실도 다시 시작됐다.
이 할머니는 한글교실 문을 열자마자 곧바로 복지관을 찾았다. 공책에 '가족', '낙지' 등 단어를 한자한자 적으며 어눌한 발음으로 따라 읽었다.
글을 모른다는 한을 풀기 위해 향후 검정고시 합격과 자서전 한 권을 작성하겠다는 당찬 계획도 세웠다.
"주위에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내가 겪었던 어려움과 서러움을 담은 자서전 한 권도 써보고 싶어. 무엇보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담아 나 자신에게 내 이름 석 자 담긴 편지 한 통을 쓰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