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의 공간정치학

      2020.10.13 18:37   수정 : 2020.10.13 18:37기사원문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각종 집회 금지조치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광장정치 논쟁이 한창이다. 광화문광장에서 개최됐던 촛불 시위와 태극기 시위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된 분열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헌법이 보장한 집회·결사의 자유와 코로나 팬데믹을 막아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하는 정부의 책무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가에 대한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광장은 도시기반시설 중에서 공간시설에 속한다. 동법 시행령에는 광장을 교통광장, 일반광장, 경관광장, 지하광장, 건축물 부설광장 등으로 세분화하고 있다. 그중에서 일반광장은 주민의 집회, 사교, 오락, 휴식공간 제공과 경관·환경 보전이 필요한 곳에 설치하도록 규정돼 있다.

광장은 예로부터 민주정치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그리스 시대의 아고라(agora)와 로마 시대의 포럼(forum)이 대표적인 예다.
아고라나 포럼 주위에는 시민의 삶과 밀접한 시설들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가 됐다. 상거래가 이뤄지는 시장 역할도 하면서 정치적 토론이나 집회, 재판 등이 열리는 다목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군국주의 시대를 거쳐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광장은 정치적·군사적 행사를 치르는 장소로 그 기능이 변화했다. 시민이 자유롭게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에서 통치자의 위대성을 강조하고,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공간으로 변한 것이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베이징의 톈안먼(천안문) 광장, 평양의 김일성 광장 등이 좋은 예다.

우리 국민이 최초로 관심을 갖게 된 광장은 국군의 날 행사가 매년 열렸던 여의도 광장이다. 2002년 월드컵 응원장소로 자리매김한 서울 시청 앞 광장은 온 국민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광장의 위대한 힘을 보여줬다.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필두로 박근혜 대통령 퇴진운동과 최근의 문재인 대통령 퇴진운동에 이르기까지 광화문광장은 국민저항권을 실현하는 장소로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가진 도시공간이 됐다.

시민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에 광장은 문학작품과 영화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최인훈은 그의 대표작 '광장'에서 남한은 이기적이고 욕망이 가득한 밀실의 세계로, 북한은 억압과 통제가 난무하는 위선적 광장으로 대비시켰다. 아카데미 수상작인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은 그레고리 펙과 로마의 스페인광장에서 젤라토를 먹으며 공주 신분에서 벗어나 서민 생활을 맛본다. 최인훈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공공공간으로서의 광장을,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는 빈부격차나 신분을 떠나 자유로운 만남과 교류가 일어나는 공공공간으로서의 광장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광장의 양면적 공공성 때문에 도시계획을 할 때 도시의 중심부에 광장을 설치한다.

광화문광장이 우리나라 공간정치의 중심지로 등장하는 이유는 청와대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국가상징거리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광화문에서 시청과 서울역을 거쳐 용산과 한강에 이르는 약 7㎞ 구간의 이 거리는 경복궁과 서울역, 용산 미군기지 등을 통과하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국가상징거리의 출발점인 광화문광장은 국가의 미래를 보여주는 공간이 돼야 한다. 현실 정치에 매몰돼 이런 비전이 묻혀버리는 장소가 돼서는 안 된다.


광화문광장이 분열과 대립의 장소가 돼버린 지금 광장의 본래 의미와 설치목적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일이다.

류중석 중앙대 사회기반시스템공학부 도시시스템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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