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는 멀어진 일본의 '왼손'
2020.10.20 18:28
수정 : 2020.10.20 21:36기사원문
그가 정권을 잡았던 1980년대 초는 '미·소 신냉전기'였다. 40년이 지난 현재 미·중 갈등과 사뭇 비견된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당시까지 전후 일본 외교를 지탱해 온 경제발전 중심의 요시다 노선부터 멀찍이 치워버리고, 기꺼이 미국을 위해 일본을 '불침항모'로 삼겠노라고 강조했다. 미·일 군사동맹 강화는 보통국가로 가기 위한 발판이었다. 동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기 위해서 '왼손의 한국'은 일본의 세를 형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핵심 패였다.
한·일 관계 개선은 그 전제였다. 이듬해인 1984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답방 형태로 일본을 국빈방문했을 때는 "금세기 일본이 한국과 한국 국민들에 대해 큰 고난을 끼쳤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며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이런 입장은 전 대통령의 쇼와 일왕과의 면담에서 '유감' 발언으로 이어졌다.
2010년 나카소네 전 총리는 지한파 언론인인 아사히신문의 고 와카미야 요시부미 주필(2016년 작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그런 짓을 한 이상, 한 번은 사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당시의 입장이었노라고 밝혔다. 그러곤 덧붙였다. "나는 민족주의자이기 때문에 한국의 민족주의도 이해하고 있었다"라고. 정치감각으로 무장한 뛰어난 현실정치가였고, 일본 국익의 관점에서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외교설계자였다.
지난 17일 도쿄 미나토구 그랜드프린스 신다카나와 호텔에서 101세를 일기로 타계한 그의 장례식이 일본 정부와 자민당 합동장으로 거행됐다. 일본 '보수의 원류' '원조 보수' '대통령급 총리'였다는 별칭이 무색하게 코로나19로 일본 국민의 삶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인의 장례식에 거액의 정부예산(1억9000만엔, 약 21억원)이 투입되는 게 맞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전직 대통령과 전직 총리, 서울시장 등의 장례식에 국민세금이 투입되는 게 당연지사로 여겨지는 한국의 정치풍토에서는 사실 조금 낯선 풍경이다. 일본의 한 누리꾼은 냉전시대 기풍을 갖고, 한국에 친근함을 느끼는 세대가 저물었다며 "어쩌면 이것이 한·일 관계의 장례식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40년 전 왼손에 한국의 손을 잡았던 일본의 대한반도 외교 역시 저물었다. 물론 한국도 잡았던 일본 손을 놓은 지는 오래인 듯하다.
아베 노선의 충실한 계승을 내세우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취임 후 첫 통화를 호주의 스콧 모리슨 총리와 했고, 두번째 통화는 미국과 했다. 미국은 제1의 동맹국이고, 호주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에 참여하는 준동맹국이다. 이달 초에는 인도를 포함해 인도·태평양 구상에 참여하는 4개국 외교장관이 도쿄에 집결했고, 스가 총리는 이 자리에서 대중국 포위망 결성에 일본 외교가 중추가 될 것임을 자처했다.
스가 총리의 첫 외국 방문국은 중국과 긴장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베트남이다. 세 불리기에 나선 일본의 왼손이 이미 한보따리 가득하다. 전략적 이익으로 불리는 21세기형 협력의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기는 만무해 보인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