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닌 부산 택한 이유는 지역 경제상황이 너무 절망적"
2020.10.26 18:56
수정 : 2020.10.26 18:56기사원문
이언주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오거돈 전 시장이 성추문으로 물러난 만큼 여성 차기 시장 후보에 대한 관심도 높은 가운데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21일 부산 중앙동 인근에서 파이낸셜뉴스와 만난 이 전 의원은 "첫 여성 광역단체장의 등장은 우리나라 정치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될 것"이라면서 "야당이 야당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현 상황에서 선거에 이기더라도 대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시장을 내세워서는 미래가 없다"고 출마의 변을 던졌다.
―영도여고 출신으로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의외로 이 전 의원이 부산 출신이라는 점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다녔다. 본적도 영도구 대평동이다. 사실 부모님이 부산대 커플이셨다(웃음). 르노삼성자동차에서 법무팀장으로 일했고, 센텀시티 외자유치 때도 외투법인들 자문을 담당했다. 국회에서도 지역구는 아니었지만 부산 관련 일이 있으면 늘 차출되곤 했다. 산자위 소위원장을 비롯해 행안위 쪽에서는 부산 산업전환 관련 연구단체 활동도 했다. 현재 국민의힘 부산 남구을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다.
―전국구 이미지가 강한데, 서울이 아니라 부산시장에 도전하는 이유는.
▲정치 입지만 보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향인 부산에 내려와서 보니 대한민국의 모순을 가장 많이 안고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이다. 경제지표만 보더라도 고용률, 경제활동참가율, 공장 가동률 등이 전국 웬만한 도시보다 낮다. 전국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르고, 청년실업도 심각하다. 원도심은 공동화 현상으로 사실상 죽어가는 도시가 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산이 죽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혁신 시점을 실기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이 정도로 성장했으면 거대경제권이 최소 2~3곳은 돼야 한다. 정치 측면에서도 부산은 큰 변동의 시발점이다. 부산이 무너지면 야권의 사상적 보루도 무너질 수 있다. 부산이 발전하지 못했던 것도 스스로 지방도시로 정체성을 규정하고 거기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부산의 수장은 세계적 리더가 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경쟁도시가 서울이 아니라 싱가포르, 홍콩, 샌프란시스코, 시드니 같은 곳이 돼야 한다. 지난 총선 공약으로 가덕신공항, 해양관광클러스터 등 산업전환 측면에서 기존 하드웨어, 제조업 위주의 먹거리를 관광·문화 등 소프트웨어, 콘텐츠 위주로 바꿔야 한다는 정책을 내놨다. 그 덕분에 부산시장 공약이냐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웃음). 총선 후 부산에 머물면서 부산의 현안들, 예를 들어 산복도로 리디자인 같은 것들을 많이 구상했다. 부산은 제2 산업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의힘 후보 간 당내 경쟁도 치열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데.
▲기득권이 변화와 혁신을 얘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가장 기득권이 없는 사람이 시장이 돼야 한다. 부산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단지 부산에 오래 있었다는 이유로,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은 더 이상 안 된다. 지금까지 숱한 기회를 줬는데 해내지 못한 사람들이 또다시 기회를 달라고 하는 꼴이다. 서울시장은 당선이 가장 중요하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존재감 크고 득표력이 높은 사람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부산시장은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국민의힘의 변화를 상징할 수 있는 혁신적 인물, 세대교체를 상징할 수 있는 인물을 내야 한다. 시대의 흐름과 선거 구도도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만큼 해볼 만하다고 본다.
―최초의 여성 광역단체장이 갖는 의미도 크다.
▲이전에도 여성 출마는 있었지만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저는 당선 가능성이 있는 유력 후보 중 하나다. 당선되면 부산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사에 큰 획을 긋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좌우를 떠나 여성의 정치참여를 높이고, 가부장적 질서를 깨기 위해 힘써온 결과 제도적으로는 남녀가 비교적 평등에 가깝게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위로 올라갈수록 유리천장이 두껍다. 제가 30대 중반이었을 당시 30대 대기업에서 최연소 여성 임원이 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여성 경제인 출신 인재영입 케이스로 정치에 입문했다. 39세 때는 지역구에 당선됐다. 여성 최초 광역단체장의 등장은 미래 리더를 꿈꾸는 이들과 현재 리더 역할을 하고 있지만 힘들어하는 많은 여성들에게 큰 용기를 주는 일이 될 거라 생각한다.
―신공항 논란에 대한 입장은.
▲가덕신공항을 해야 한다, 김해보다 가덕이 더 좋다. 이거 다 알고 있는 얘기다. 그런데 '어떻게'가 빠져 있다. 무조건 해달라고 주장만 할 게 아니라 될 수밖에 없는 명분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김해공항을 놔두고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전체를 가덕으로 이전해야 한다. 인천공항을 모델로 해선 안 된다. 하나의 통합된 신공항으로 가야 한다. 김해공항 부지 내 군공항도 이전을 추진하면서 그 부지를 개발해 수익을 충당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여객뿐 아니라 화물공항으로서 기능도 살려야 한다. 화물공항이 남부권에 꼭 있어야 한다. 물류 경쟁력에 있어 우리의 경쟁자는 인천공항이 아니라 일본·홍콩 국제공항이 돼야 한다.
―이번 기회에 부산시민들에게 한 말씀 한다면.
▲우리나라 지도를 거꾸로 보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늘 광활한 대륙을 쳐다보면서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바다야말로 우리의 희망이다. 태평양과 전 세계로 열려 있는 바다가 곧 영토가 되는 날이 오고 있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몰려오고, 무한한 상상력과 꿈을 꿀 수 있는 도시, 부산을 다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defrost@fnnews.com 노동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