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영웅' 이건희의 마지막 출근길
2020.10.28 15:48
수정 : 2020.10.28 16:49기사원문
【화성(경기)·서울=김경민 김서원 김지환 기자】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발인이 있던 28일 오전 11시께 경기 화성사업장과 인근에는 수천여명의 임직원과 협력사 임직원, 주민들이 이건희 회장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낸 이건희 회장의 운구와 유족들은 이날 오전 삼성서울병원에서 영결식에 이어 서울 한남동 자택과 승지원, 화성사업장 등을 차례로 들른 뒤 이병철 선대회장의 부모와 조부가 잠든 수원의 가족 선영에서 영면에 들었다.
이날 화성사업장 외벽에는 고인을 애도하는 임직원들의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운구차량은 11시께 화성캠퍼스 도착, 출문까지 캠퍼스내 약 2㎞ 도로를 25분간 행렬했다. 임직원들은 국화꽃 한송이씩 든 채 사업장 내부 4차선 도로 양 옆 보행로에서 이 회장의 운구 행렬을 맞이했다. 오랜 기간 삼성에 몸 담아왔던 직원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인근 주민들도 나와 이건희 회장과 각자 나름의 작별인사를 나눴다.
운구차는 임직원 모두에게 인사하듯 매우 느린 속도로 지나갔다. 사람들은 차량을 계속 응시했다. H1 정문에서 만난 이모씨(30)는 "원래부터 존경하던 분이라 나오게 됐다"며 "육아휴직 중에도 마지막 가시는 길을 보고 싶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각 건물동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생전 모습이 담긴 추모영상이 계속 흘러나왔다. 영상 배경음악으로는 '노스텔직 스코어'와 영화 '늑대와의 춤을' 삽입곡인 '존 던버 테마'가 추모 분위기를 더했다.
직원 정모씨(34)는 "학생시절부터 내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영상을 보고 있었다. 본받을 만한 분"이라고 했다.
화성사업장은 이 회장이 생전인 지난 2010년 기공식과 2011년 마지막으로 웨이퍼 출하식을 직접 챙겼던 삼성전자 반도체 16라인이 있는 곳이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전인 2010년 화성사업장의 16라인 메모리반도체 기공식에 참석해 직접 삽을 떴다. 생전에 고인은 2004년 반도체 사업 30주년 기념 행사를 포함, 2003년, 2010년, 2011년 등 화성캠퍼스에 4차례 방문했다.
화성사업장은 삼성 반도체의 최첨단 공정인 극자외선(EUV) 장비가 들어간 V1 라인이 있는 곳으로, 삼성 반도체의 미래를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부친인 이병철 선대회장이 기흥에서 반도체 씨앗을 심었다면, 이건희 회장은 화성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
16라인 맞은 편은 V1 라인이 위치해 마치 반도체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듯 했다. 운구행렬은 추모장이 마련된 16라인에 잠시 멈춰 간단한 의식을 치렀다.
운구차량에서 영정과 위패, 유족, 사장단 인사들이 내려 임직원들을 격려했던 16라인 앞으로 향했다. 임직원들의 묵념에 이어 방진복을 입은 남녀 직원이 16라인 웨이퍼를 들어보여 이건희 회장에게 깊은 감사와 애도를 표시했다. 반도체 영웅인 고인께 후배들이 헌사하는 마지막 예우였다.
이후 운구행렬은 16라인 바로 옆 H3 게이트로 빠져나가 장지인 수원 이목동 선영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건희 회장 장지는 홍라희 여사의 뜻에 따라 이건희 회장의 부친 이병철 선대회장과 모친 박두을 여사가 묻힌 용인이 아닌 수원 선영으로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10여㎞ 떨어진 삼성 수원 본사와 기흥·화성사업장 등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다.
묘역에서 진행된 장례는 약 1시간가량 엄숙히 진행됐다. 이건희 회장은 장례 절차가 끝난 뒤 묘역에 안장돼 78세의 일기를 마쳤다.
한편 이날 오후 12시께 찾은 삼성 서초사옥의 점심시간 풍경은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사옥 앞 깃봉의 한 폭 내린 조기로 게양된 삼성기만이 삼성 총수와의 이별을 짐작케할 뿐이었다.
삼성 출입증을 목에 걸고 사옥 근처로 점심식사를 하러 나온 직원들 사이에선 간간히 "회장님…"이라는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별세 소식에 많이 놀랐다"는 짧은 반응이 대다수로, 임직원들은 그룹 오너의 별세에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이번주 일부 삼성 직원들은 추모의 의미를 담아 회식 등 외부 행사를 스스로 취소하기도 했다.
km@fnnews.com 김경민 김서원 기자 , 김지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