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도 없고 가게는 안나가고… 살려고 ‘밥집’으로 바꿨어요"

      2020.11.01 18:12   수정 : 2020.11.01 18:31기사원문
"한복 대여점 67곳이 있었는데 4분의 1도 안 남았습니다."

1일 서울 종로구 북촌에서 만난 한복 대여점 사장 정모씨(50)는 "나도 가게를 내놨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의 대표 관광명소인 북촌 일대는 2016년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때도 타격이 컸지만 지금보다는 덜했다.

중국 관광객은 물론 국내 관광객도 발길을 끊으면서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졌다. 북촌 일대 상인들은 정부의 1차 소상공인 대출 때 받은 1000만원이 바닥 난 지 오래다.


보증금·임대료 반값에도 ‘텅빈’ 거리


이날 찾은 북촌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골목마다 '임대 문의'가 붙어 있고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공실인 경우가 많았다. 사진을 찍거나 쇼핑을 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코스로 꼽혀 평일에도 북적이던 과거의 모습은 오간 데 없었다.

북촌 일대의 보증금과 임대료는 절반 이상 낮아졌다. 삼청동 거리 대로변 1층 상점에 '임대 파격할인'을 써붙인 한 공인중개사는 "전용 16.5평형이 보증금 4000만원, 월 220만원"이라며 "지난해까지 보증금 1억원에 월 임대료가 700만원이었지만 상권이 침체되면서 점점 내려갔다"고 말했다. 그는 "2년 계약을 하면 임대인이 3~4개월 '렌트 프리(임대료 면제)'도 해준다"고 덧붙였다. 권리금은 사라진 지 오래다.

상가 매물은 쌓이고 있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북촌 상권이 안 좋아지면서 가격을 현실화한 곳도 많지만 매물은 안 나가고 가게들만 빠지니 매수를 문의하고도 불안해서 선뜻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북촌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유모씨(60)는 "거리두기 1단계가 됐지만 서울 상황이 더 안 좋다 보니 지방 관광객들이 서울로 잘 올라오지 않고, 호텔도 할인을 많이 하니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손님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관광객 없고 직장인뿐… ‘밥집’ 변경


관광객이 줄어드니 상권 변화도 눈에 띄었다. 이날 점심시간에 북촌, 삼청동 거리를 오가는 식당·카페 이용객들은 사원증을 목에 건 직장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관광객보다 직장인을 주고객층으로 바꾸는 식당도 늘고 있다.

실제로 10여년간 관광객을 대상으로 프리미엄 수제 한국 라면점을 운영했던 이모씨(73)는 최근 설렁탕집으로 간판을 바꿨다. 이씨는 "라면을 팔았을 땐 손님의 60%가 외국인이었다"며 "코로나19가 터지자 더 이상 외국인만 바라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인근 중개업소에서도 술집이나 옷가게보다는 국밥집·수제비집 등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일반음식점 개업을 추천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인근에 감사원, 금융연수원이 있고 갤러리 등을 운영하는 상주인구가 있어서 차라리 밥집을 하는 것이 낫다"고 설명했다.

상인들 "업종변경 지원해달라"


북촌 일대 상인들은 공영주차장 개설, 도로점용 허가기준 완화 등의 정책적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한 음식점 상인은 "북촌은 지하철역에서 10분 이상 걸어야 하고, 마을버스도 하나라 교통편이 안 좋다"며 "공영주차장 증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패션잡화점을 운영하는 이모씨(40)는 "장사가 안되니 간절한 마음에 가게 앞에 행거를 두기도 하는데 누가 민원을 넣으면 구청에서 바로 걷어간다"며 "한시적으로라도 도로점용 허가기준을 완화해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한복 대여점 사장 김모씨(54)는 "80%가 넘던 외국인 손님이 끊겨 장사가 최악이지만 계약기간이 남아 나갈 수도 없다"며 "시에서 업종 변경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 조윤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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