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자신감과 현실

      2020.11.03 18:05   수정 : 2020.11.03 18:05기사원문
중국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독특한 언어문화다. 수도 베이징이든, 외곽 지방 소도시든 한결같다. 아무리 고유명사라고 해도 외국어를 그대로 표기하거나 쓰는 법이 없다.

맥도날드는 '마이당라오', 코카콜라는 '크어르어', 까르푸는 '자러푸' 등으로 바꾼다. 중국어로는 대체할 단어가 없어도 기어코 찾아낸다.
한번쯤 중국을 여행해본 이들이라면 금세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문화는 국가적 정책과 전략에서도 드러난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굴기'다. 중국어의 사전적 의미는 산봉우리 따위가 우뚝 솟는다는 뜻인데, 우주나 반도체 등과 결합하면 그 분야에서 봉우리가 솟듯이 흥기한다는 뜻이 된다. 우주 로드맵이나 반도체 프로젝트 등으로 쓸 법도 하지만 굴기라는 단어로 모든 의미를 압축한다.

이는 중국 문화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이뤄진다는 중화사상과 기술전쟁에서 패권을 차지하겠다는 의지가 뭉쳐진 자신감으로 해석된다. 또 어차피 중국이 핵심이기 때문에 외국어를 그대로 쓸 이유가 없다는 취지도 담겨 있다. 그래서 발음이나 의미가 비슷한 자국어를 끌어다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낸다.

중국 공산당이 지난주 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19기5중전회)를 열고 14차 5개년 계획과 2035년 중장기 발전전략을 공개했다. 내수 확대와 첨단기술, 혁신의 기치 아래 발전의 동력을 일으켜 미래 세계경쟁에서 정상을 차지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아울러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를 실현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중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당장 미국을 겨냥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전방위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만큼 여기에 맞선 완전한 자력갱생 체계를 구축한 뒤 10년 뒤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국이 된다는 포부를 분명히 했다는 설명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19기 5중전회를 통해 현재 국제사회 대격변기에 패권국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면서 "세계 패권국으로 가는 길에 외부의 압력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청사진을 당당히 꺼내놓을 수 있는 것은 늘 그래왔듯이 역시 그 속내에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그동안 수출과 무역을 통해 세계에서 유례없는 성장을 매년 해왔고, 14억 인구의 세계 최대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길'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더욱이 최소한 겉으로는 중국 내에서 코로나19 상황이 안정 단계에 접어들었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는 아직까지 감염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점도 중국 입장에선 일정부분 긍정적 요소다.


다만 중국이 여전히 수많은 국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며 현대 세계의 구조가 '나홀로' 잘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은 현실적 걸림돌이다. 기술 혁신과 발전을 토대로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한다면서 국가의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이미 세계 패권국이라는 자신감을 꺼내놓은 중국이 어떻게 목표를 달성해 나갈지, 각국과 갈등을 어떤 식으로 풀어 기술굴기를 이어갈지 이래저래 관심사다.

jjw@fnnews.com 정지우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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