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 스스로 결정'…연명의료의향서 등록 74만명
2020.11.05 12:01
수정 : 2020.11.05 12:01기사원문
[서울=뉴시스] 안호균 기자 = 한해 사망하는 사람 중 75% 가량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병원에서 사망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의학적으로 소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연명의료라고 불리는 생명 연장을 위한 시술이나 처치를 받으면서 남은 시간을 보낸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연명의료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의미한다.
하지만 많은 환자들은 무의미하게 생명을 연장하면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지난 2008년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할머니의 가족들은 환자의 평소 뜻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를 계기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지속해야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 대법원은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후 대통령 소속 국가 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2013년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구체적 절차와 방법을 논의했고,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정부에 권고했다.
이 권고에 따라 2016년 제정된 법이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단계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다.
2018년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은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고 있다고 의사가 판단한 경우라면 환자의 의향을 존중해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환자가 스스로의 의사로 연명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해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연명의료에 대한 본인의 의사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남겨놓을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의 성인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됐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 중단 결정, 호스피스(완화 의료)의 선택 등에 대해 작성하는 문서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보건소, 의료기관 등 459곳의 등록기관에서 작성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이미 작성한 경우라도 언제든지 그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본인이 직접 작성하지 않거나 작성 과정에서 설명이 제공되지 않은 경우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더라도 법적 효력이 없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요청에 의해 담당의사가 작성한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등록한 296곳의 의료기관에서 작성할 수 있다.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인지 여부는 해당 환자를 직접 진료한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가 1명이 동일하게 판단해야 한다. 연명의료계획서 또한 환자 본인이 담당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들어야 하고, 이미 작성한 경우라도 언제든지 그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연명의료결정제도 도입 1년8개월 만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74만명,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는 5만3000명을 넘어섰다. 고령층의 참여가 활발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의 80%,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의 70% 이상이 60대 이상이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도 늘고 있다. 2018년 2만8000건이었던 연명의료 중단 결정은 2019년 5만2000건으로 늘었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는 7만3000건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하는 비율은 낮은 편이다. 현재까지 내려진 연명의료 중단 결정 12만5000건 중 8만건(65%)은 환자 가족 2인 이상의 진술이나 합의에 의해 이뤄졌다. 연명의료계획서를 등록한 경우가 4만1000건(32.8%)이었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경우는 3400건(2.7%)에 불과했다.
한해 사망자 4명 중 1명은 요양병원에서 삶을 마감하지만, 정작 요양병원에서 연명의료를 중단하기 힘들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이 국가생명윤리정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요양병원에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한 곳은 전체 1571곳 중 43곳(2.7%)에 불과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하더라도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내려지려면 병원에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하지만 5명 이상의 위원을 둬야 하고 비용 부담도 들어 규모가 작은 요양병원들이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두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윤 의원은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요양병원에서 정작 연명의료 중단이 될 수 없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요양병원 입장에서는 득이 될 것이 없는데 해마다 200만원의 위탁료와 1건 당 15만원의 심의료를 부담하는 것이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재정적 지원과 더불어 행정 절차 간소화, 지역의 공용윤리위원회를 별도 운영하는 등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한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ahk@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